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전후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평화헌법 개정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민당은 25일 도쿄에서 열린 당 대회에서 헌법에 자위대 존재 명시 규정을 추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자민당 차원의 헌법 개정 초안을 공식 발표했다. 사학법인 모리토모학원 특혜 의혹 스캔들로 아베 신조 정권이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개헌안 초안 제시가 미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예상을 깨고 자민당은 헌법 개정 초안 발표를 강행했다.
자민당은 전력(戰力) 소유 금지를 규정한 현행 헌법 9조 2항을 그대로 두는 대신에, ‘9조2’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9조2’에는 “전조(9조1항과 2항)의 규정은 우리나라 필요한 자위의 조처를 취하는 것을 막지 않으며, 이를 위한 실력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한 것에 따라서 내각의 수장인 총리를 최고 지도자로 하는 자위대를 보유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자민당 헌법개정 추진본부는 처음에는 자위대가 “필요 최소한의 실력조직”이라는 구절을 넣어서, 자위대가 군대의 전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 했다. 하지만 이 표현이 자위대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당내 여론에 따라서 없앴다. 자민당 헌법 개정안대로 개정이 진행되면 전력 소유를 금지한 9조2항이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 자민당은 이밖에 △대규모 재해발생시 국회의원 임기 연장 △참의원 선거구 조정 △교육의 중요성을 국가 이념으로 위치시키는 내용도 헌법 개정안으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당대회에서 “드디어 당 결설 이후 과제였던 헌법 개정에 힘쓸 때가 왔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서 자위대가 위헌이라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게 자민당의 책무다”며 헌법 개정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도 당무 보고를 하면서 “중·참 양원의 헌법심사회에서 논의를 심화해 헌법개정 원안을 만들어 (국회 발의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의 헌법 개정 작업은 지난해 5월3일 헌법기념일에 열린 개헌파 집회에 아베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자위대를 명기하는 형태로 헌법을 개정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자민당은 2012년에도 “총리를 최고 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일본 내에서도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자민당은 2012년에 비해 약화된 개헌안을 제시해 국민들의 경계감을 누그려뜨리려는 듯 하지만, 개헌이 실현되면 일본 현행 평화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전력 보유 금지 9조2항이 사문화되면서, 공격형 무기 보유 금지, 국외 무력 행사 금지의 고삐가 풀릴 수 있다. <도쿄신문>은 일본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관계자들이 아베 총리가 주장한 헌법 개정안과 비슷한 내용을 지난해 이전부터 주장했다며, 이들이 자위대 명시 규정을 추가하는 개헌으로 “헌법9조2항을 사문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아베 정부는 2014년 헌법 해석 변경과 2015년 안보법제 제개정으로 현행 헌법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해왔는데, 헌법 개정으로 평화헌법의 근간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또한, 자민당은 국민들의 거부감이 덜한 부분부터 헌법을 개정하고 이후 평화헌법 내용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2단계 개정을 할 의도가 엿보인다. 자민당 헌법개정본부의 후나다 하지메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집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9조2항을 삭제하면 자위대 역할과 기능이 무한히 확대된다는 우려를 국민에게 줄 수 있다. 9조2항을 남겨두는 형태로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이 국민의 의해를 얻기 쉽다”며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최초 헌법 개정이 앞으로 있을 여러번의 (개정)의 전제라는 생각이다. 국민들이 우리의 헌법 개정에 작업에 익숙해지면 장래에는 9조2항을 삭제한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이날 개헌 추진과 관련해 “정당의 틀을 넘어, 선두에 서서 국민과의 논의를 깊게 해 간다“는 내용의 올해 행동방침도 정했다. “영토와 역사인식에 관해 전략적 대외 발언을 한층 강화한다”는 내용도 행동방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공문서까지 조작했다는 파문이 확산되면서 지지율이 31%(<아사히신문> 조사)까지 떨어진 상태라, 자민당이 올해 안에 국회에 예정대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당대회에서도 헌법 개정 이야기를 꺼내기 앞서, 공문서 조작 스캔들부터 사과했다. “행정에 대한 신뢰를 흔든 사태가 됐다. 책임을 통감한다. 최종적 책임은 나에게 있다. 다시한번 국민에게 깊이 사죄 말씀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헌법 개정 찬성파와 반대파를 막론하고 아베 정부의 개헌 작업 강행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과 비판이 여전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며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신지로 의원은 당 대회 뒤 공문서 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정치사에 남을 큰 사건이다”며 “(헌법) 개정은 찬성하지만 야당 지지자 그리고 지지 정당이 없는 사람도 포함해서 찬성한다는 기운이 높아지지 않으면, 국민투표 (통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개헌에 우호적인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 대표는 지난 16일 “지금은 숙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민진당의 오가와 토시오 의원은 25일 <엔에이치케이>(NHK) 토론 프로그램에서 “여기까지 와서 헌법 (개정 작업 논의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숨기기를 위해서 화제를 돌리려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는 “공문서를 조작한 정권을 신용할 수가 없다. 헌법 (개정) 논의를 할 수 있는 전제를 부순 이는 아베 총리 본인이다”고 말했다.
공문서 조작 의혹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관련한 공문서 조작을 재무성 본청이 국유지 매각을 담당한 지방 부서에 이메일로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유지 매각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오사카지검 특수부가 이런 메일 내용을 입수했다고 전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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