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세력 ‘Y염색체’ 들먹이며 ‘여왕 허용’ 반발
‘천황제’ 근본물음은 실종
‘천황제’ 근본물음은 실종
“인간의 성염색체는 X와 Y가 있고, Y염색체는 남자에만 있습니다.”
중학교 생물 수업시간이 아니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우파 의원모임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회장 히라누마 다케오)의 연구회에서 나온 말이다. 왕실전범에 관한 전문가 회의가 지난 24일 여성·여계(모계) 일왕 허용과 장자 우선 승계를 뼈대로 한 보고서를 내놓자, 극우 전통주의자들이 대응책 모색을 위해 긴급히 마련한 자리다.
이날 ‘Y염색체론’을 둘러싼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이는 남자 쪽에 의한 왕위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새롭게 동원된 논리다. 남자 유전자에만 있는 Y염색체는 아무리 후대로 내려가더라도 남자 쪽 자손에게 완전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일왕의 표식’이 된다는 게 그 핵심이다.
야기 히데쓰구 다카사키경제대 교수는 전문가회의에서도 이런 주장을 펴면서 “남계(부계)가 아니면 피를 계승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이다. 납치구출 의원연맹 회장인 히라누마는 “125대 왕실 전 역사에 걸쳐 Y염색체의 유전정보가 남자를 통해 전달돼 왔는데 이제 중단되게 됐다”고 침통해 했다.
Y염색체를 물려받아야만 혈통이 계승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별로 없다. 이날 연구회에서도 ‘Y염색체론’이 일반 국민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는 반론이 적지 않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유전학까지 뒤지게 된 것은 그만큼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극력 저지 대상은 여계 일왕의 출현이다. 왕실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희박해 현 왕세자의 딸인 아이코 공주의 왕위계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과거에도 여왕이 8명이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여왕들이 독신이어서 왕위가 다시 남자 왕족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코 공주가 일반인과 결혼해 낳은 자녀·후손이 왕위를 이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일왕의 혈통이 2천년 넘게 이어져 왔다고 강변해온 ‘만세일계설’이 밑바닥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세일계는 천황제 국가 이데올로기의의 근간이다. 우경화를 틈타 일왕을 상징에서 국가원수로 격상하려 안간힘을 쏟는 이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신사 본청, 옛왕족까지 가세해 왕위계승에 대한 논의가 졸속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논의는 아예 실종됐다. 천황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일왕가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높긴 하지만, 한해 2500여억원의 국고를 쓰는 왕실의 존재 이유를 누구도 따지려 들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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