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후사와 오키나와민중운동에 관한 연구 1인자로 꼽히는 아라사키 모리테루 오키나와대 명예교수가 지난 31일 폐렴으로 숨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2일 전했다. 향년 82.
아라사키 명예교수는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오키나와 출신 부모 영향으로 일찍부터 오키나와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코강화조약 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발효로 일본은 독립을 되찾아았지만,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분리돼 미군 점령이 이어졌다. 오키나와 미군 점령 상태가 이어지는 데도 학교에서 축하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큰 위화감을 품었다고 한다. 대학 졸 뒤 영문학자이며 평화운동가였던 나카노 요시오가 설립을 주도한 오키나와자료센터의 주임 연구원이 되면서 오키나와 연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1974년 오키나와대에 부임했으며, 80년대와 2000년대 학장을 역임했다. 오키나와 전후사 연구를 통해서 일본 사회의 오키나와에 대한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으며, 평화운동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오키나와 미군 주둔 문제와 오키나와 차별 문제에 대한 발언과 운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3년 제주도를 방문했던 아라사키 명얘교수는 “아베 정권은 ‘아름다운 일본 건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내용은 군사력 강화를 통한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과거 일본이 저지른 일본군 위안부나 오키나와 집단자결 문제 등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싶어한다”며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
저서로는 <오키나와 전후사> <오키나와 반전지주> <오키나 동시대사> 등이 있다. <오키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은 국내에도 번역된 대표적 오키나와 저항 운동 관련 서적이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