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3일 이라크 남부 사마라에 파병된 육상자위대원들이 기지를 방문한 누카가 후쿠시로 당시 일본 방위상을 호위하고 있다. 사마라/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육상자위대가 해외 파견 활동 문서의 존재를 1년 이상 은폐한 의혹이 불거졌다. 2차대전 이전 일본군의 폭주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강조해온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원칙이 흔들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은 4일, 육상자위대가 2004~2006년 이라크 평화유지군(PKO) 파견 당시 ‘일보’(일일보고) 문서의 존재를 1년 전인 지난해 3월에 파악했지만 당시 방위상이었던 이나다 도모미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이나다 전 방위상이 없다던 이라크 파견 자위대 일보를 자위대가 석달 전쯤 발견했다며 2일 사과했는데, 이틀 만에 발견 시점이 1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자위대가 조직적 은폐를 해왔다는 의혹이 번지고, 야당 의원들은 자위대의 문민 통제가 기능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5일 “매우 유감이다. 은폐에 해당하는지까지 조사해서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은폐 의혹은 1년 전 다른 문서 은폐 사건에서부터 비롯됐다. 야당은 2016년 남수단 파견 육상자위대가 전투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자위대 활동과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일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나다 전 방위상은 “폐기됐다”고 답했다. 그런데 폐기됐다던 자료가 지난해 2월 사실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야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파견 자위대 일보의 존재도 물었다. 이나다 전 방위상은 이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자위대는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한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3월 육상자위대는 이라크 파견 자위대 일보를 찾았지만 이나다 당시 방위상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이번에 밝혀졌다. 육상자위대 연구본부는 “남수단 파견 자위대 일보에 대해 조사하던 중이라서 이라크 일보는 보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남수단 일보 문제가 주로 관심을 받던 점을 이용해 이라크 일보는 일부러 숨겼다는 의혹이 크다.
지난해 8월 일본 육상자위대 탱크들이 후지산 기슭 고텐바 훈련장에서 실탄을 사용한 훈련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위대의 문민 통제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큰 것은 육상자위대가 창립 이후 최대의 조직 개편으로 ‘전투 중심 조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육상자위대는 4일 총사령부 격인 육상총대 발족식을 도쿄 아사카 기지에서 열었다. 육상자위대는 1954년 창립 이후 해상자위대나 항공자위대와 달리 산재한 부대를 통합 지휘하는 조직이 없이 5개 방면대 체제로 운영해왔다. 이렇게 된 것은 과거 일본 육군이 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침략전쟁을 주도하면서 군국주의의 총본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육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군은 내각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공공연하게 관저로 쳐들어가 총리를 살해하거나 암살을 시도하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는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해양 진출 경계를 이유로 육상자위대의 오랜 금기를 풀었다. 육상자위대는 지난달 2100명 규모로 해병대 역할을 하는 수륙기동단도 창설했다. 군사평론가인 마에다 데쓰오는 <도쿄신문>에 “옛 일본군은 청일전쟁 전에 지방을 지키는 ‘진대’ 조직을 ‘사단’ 조직으로 개편하고, 참모총장이 일원적으로 지휘해 외국에서 전쟁을 하기 쉬운 형태가 됐다.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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