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국민의 적이다.”
현역 일본 자위대 장교가 야당 의원에게 이런 폭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야당인 민진당의 고니시 히로유키 의원은 17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자위대 장교에게 폭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고니시 의원은 이라크 파견 평화유지군(PKO) 육상자위대 일일보고 문건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서 정부가 자위대를 문민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해왔다.
고니시 의원과 방위성 설명을 들어보면, 16일 저녁 9시께 조깅을 하던 30대 장교와 고니시 의원이 국회 앞 도로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이 장교는 “고니시다”라고 말한 뒤, “너는 국민의 적이다”라고 여러 번 큰소리로 외쳤다. 국회 앞에서 경비중이던 경찰이 장교를 제지했으나 “기분이 나쁘다”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고니시 의원이 “복무규정 위반으로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발언 철회를 요구했으나, 이 장교는 거부했다.
방위성이 확인해 보니 이 장교는 통합막료감부 지휘통신 시스템부에 근무하는 항공자위대 3등 공좌(한국군 소령에 해당)였다. 자위대법은 투표를 제외한 자위대원의 정치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품위 유지 의무도 있다.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한국군 합참의장에 해당)은 17일 고니시 의원실에 찾아가 사과했다.
청년 장교의 폭언이 2차대전 이전 군부의 폭주를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80여년 전에도 일본군이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을 향해 폭언을 한 경우가 있었다. 1938년 국회에서 국민총동원령을 논의할 때, 정부 입장을 설명하려고 나온 사토 겐료 중좌(중령)가 장시간 연설을 하던 도중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자 “닥쳐”라고 말한 사건이 있었다. 군부의 의회 경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지금까지 언급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군은 폭력으로 의회 정치를 무력화했다. 1932년 해군 장교들과 육군 사관후보생들이 총리 관저에 난입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한 5·15사건이 벌어졌다. 4년 뒤에는 육군 장교들이 대장상 등을 살해하고 총리 살해를 시도한 2·26사건이 있었다.
고니시 의원은 “과거 청년 장교들이 ‘국민의 적’, ‘천벌이다’라고 외치며 정치가를 암살했다. 현직 자위대 간부가 국회의원을 국민의 적이라고 여러 번 외치는 폭거는 민주주의에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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