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준이치 전 재무성 사무차관이 지난 16일 청사를 나서고 있다. 후쿠다 전 차관은 17일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임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시위에 나선 여성 국회의원들은) 성희롱과는 인연이 먼 분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절대로 성희롱하지 않겠습니다. 선언합니다!”
지난 20일 자민당의 나가오 다카시 중의원 의원은 야당 여성 의원들이 재무성 사무차관 성희롱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런 조롱성 글을 적었다. 나가오 의원은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블로그에 “사죄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성희롱 사건은 후쿠다 준이치 전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기자에게 “가슴을 만져봐도 되느냐”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간지에 보도된 사건이다. 후쿠다 전 차관은 주간지가 녹음 내용까지 공개한 뒤인 지난 17일 사임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은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고 주장한다.
나가오 의원의 이번 발언은 자민당 의원들 가운데 성희롱을 가볍게 여기는 이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후쿠다 전 차관의 성희롱 사건과 뒤이은 나가오 의원의 한심한 발언으로 인해 이미 사학 스캔들로 휘청이고 있는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한 단계 더 꺾였다.
<마이니치신문>은 21일과 22일 18살 이상 유권자 56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30%에 그쳐 ‘사퇴 위험선’으로 불리는 20%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고 23일 보도했다.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게 된 계기는 지난달 2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재무성이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공문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뒤다. 이후 한동안 40~50%대를 유지하던 내각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하락세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아소 다로 재무상 겸 부총리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후쿠다 전 차관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고 신고부터 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응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베 정권을 떠받치는 기둥인 아소 부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아소 부총리가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51%에 달한다.
아베 총리가 반전을 위해 빼든 카드는 미-일 정상회담이었다. 18·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철강·알루미늄을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지도 않았다. 일본이 바라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미국이 복귀한다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주변에 “4월이 되면 국면이 바뀔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성희롱 사건 여파 등으로 기대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의 20~22일 여론조사에서 내각 비지지율은 53%로, 2012년 12월 아베 2차 정권 출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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