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일본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또 ‘납치 문제 해결’이었다. 일본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걸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기보다 해묵은 현안인 납치 문제 해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 갈 것”이라는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핵과 미사일뿐만이 아니다. 납치 문제도 있다.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미래 모습을 만들어나갈 수 없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가 진전을 볼 수 있도록 내가 사령탑이 돼 전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북-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을 한다면 납치 문제에서 성과가 나와야 한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과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인) 납치, 핵·미사일 등 모든 안건에서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일-미-한 3국이 긴밀히 협력하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등 관계국, 국제사회와 연계해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은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공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다음에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 나서면서 경제협력자금을 요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시점을 기다려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북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미치시타 나루시게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는 23일 “지금 상황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방북 때와 비슷하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제 개발 노력을 본격화하려던 때였다. 일본은 (북-일 교섭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재팬 패싱’을 피하기 위해 한·미와 소통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최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고노 다로 외상이 다음달 2~6일 한국과 미국을 잇따라 방문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및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를 만난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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