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24일 멕시코 멕시코시티 회의에 참석해 있다. 고노 외상은 이날 방문지인 멕시코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서 “회담 해도 성과 없으면 의미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학 스캔들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는 아베 총리는 이번 결정으로 적잖은 반사 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아베 총리는 2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서 “유감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중요한 것은 핵과 미사일 문제 그리고 납치(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정상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귀국 뒤 되도록 빨리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서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27일 일본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회담 개최 자체가 아니라, 핵·미사일 그리고 납치 문제의 해결을 향해서 전진할 기회가 되는 것”이라며 “북한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 일-미, 일-미-한이 압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대북 압력론을 강조했다. 또한, 북한 동향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관심을 갖고 정보 수집을 하고 일-미동맹 아래에서 긴장감을 갖고 경계감시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24일 방문지인 멕시코에서 “회담을 해도 성과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이해를 표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고노 외상은 이날 기자들에게 “북한이 회담을 꼬투리로 여러 게임을 시도해 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미국이 “최근 정세로 볼때 (북한 비핵화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라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적인 일본의 시각을 내비쳤다.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이 핵과 미사일, 납치 문제가 진전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관여될 수 있는 정세 아래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면 하고, 일본으로서도 역할을 해서 착실한 회담이 되도록 연계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일본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 등에 연결될까가 중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며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검증 가능하며)를 지향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고 정보 수집을 서두르는 동시에 계속해서 일-미-한 3개국이 긴밀히 연계해 이후 북한 대응을 조율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익명의 외무성 관계자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문제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납치 문제도 진전되지 않는다. 일본으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서둘러 열릴 필요가 없다”며 미국의 방침을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외무성 간부가 “놀랄 일은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할까 하지 않을까로 (북한을) 흔들어서, 북한에서 양보를 이끌어내도록 일-미가 연계해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3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계획 발표 뒤 한국 정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으나, 이후 미국 정부와 빈번히 접촉하며 일본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애썼다. 초기에는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야 하며 그 이전까지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북한 중단거리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까지 회담 의제로 넣으라고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일본의 이런 의제 확대 주장은 북-미 사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23일 고노 외상과 폼페이오 장관의 회담 뒤 낸 자료에서 “양 장관은 모든 대량파괴무기와 여러 사정거리 탄도 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향한 구체적 행동을 북한에서 이끌어내야 하며, 압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취소는 잇따른 사학법인 스캔들로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 중인 아베 신조 총리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49%에서 최근 38%까지 하락했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 뒤 북한이 지난해처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해 긴장 국면이 조성되면, 아베 정부는 ‘북풍’에 힘입어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3선에서 여유있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아베 정부는 지난해 봄부터 불거진 사학법인 스캔들로 지난해 7월 한때 지지율이 35%(
조사 기준)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북한의 잇딴 미사일 발사를 이용한 북한 위협론으로 지지율을 회복하고 10월 중의원 조기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