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1일 폭우 피해 지역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를 방문한 모습. 아베 총리는 폭우 피해 때문에 자민당 총재 3선 출마 선거를 다음달에 할 듯 보이지만, 선거는 사실상 시작됐다. 아베 총리 페이스북 갈무리
일본의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사실상 시작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2021년 9월까지 집권하며 여러 차례 ‘필생의 과업’이라 말해 온 개헌을 넘볼 수 있게 된다. 또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도 깰 수 있다.
아베 총리가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의 출마 선언을 다음달 하순 정도에 할 전망이라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애초 정기국회가 끝나는 22일 정식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었지만, 200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난 서남부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해 출마 선언을 늦추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11일 자신의 지지기반인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서 집회를 열어 출마 의사를 밝힌 뒤, 다음달 말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식 선언을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 큰 수해를 몰고 온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난 5일 자민당 의원들과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재해가 다가오는데 ‘안이한 대응’을 했다며 여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이후 낮은 자세로 피해 복구를 독려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그 이전부터 지방 당원들을 찾아다니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4일 사이타마현의 지역 자민당원 모임에 참석했고, 5일 낮엔 군마현 현의원 30여명을 총리 관사인 공저에 불러서 함께 하야시라이스를 먹었다.
아베 총리가 지방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2012년 9월 총재 선거 때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1차 투표 때 지방당원 표에서 열세를 보이며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에게 뒤진 2위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는 의원투표만으로 치러지는 2차 투표에서 힘겹게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아베 총리에게 석패했던 ‘대항마’인 이시바 전 간사장도 14일 자신의 정책구상을 담은 책 <정책지상주의>를 출간하며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나섰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 책에서 아베 총리의 대표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 “주가를 올리긴 했지만, 임금이 상승을 가져오진 못했다”며 비판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달 말께 정식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주요 ‘잠룡’으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도 17일 자신의 파벌 의원들과 긴급회의를 열어서, 총재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판세를 보면, 아베 총리가 총재 3선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달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여론조사를 보면, 한때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4%로 올랐다. 또 지난달 니가타현 지사 선거에서도 여당 추천 후보가 야권 단일화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아베 총리는 당내 가장 많은 의원이 속한 파벌인 호소다파(94명)와 제2의 파벌 아소파(59명) 그리고 5번째 니카이파 지지(44명)를 받고 있어서, 의원 표에서도 우위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압도적 승리’를 원하고 있다. 그래야 남은 임기 동안에 본인의 최종 목표인 개헌을 힘 있게 추진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에 압승을 거두지 못하면, 내년 참의원 선거 전에 총리 교체론이 나올 수도 있다. 아베 총리와 경쟁하는 이시바파 간부는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하면 “아베 정권은 레임덕에 빠진다. 그렇게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시바 전 간사장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기시다 정조회장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주위에 “내가 총리에서 물러나도 약 100명 파벌의 수장으로 남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출마를 선언하면, 향후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가 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위협 발언으로 해석된다. 기시다파마저 ‘아베 지지’로 돌아서면, 아베 총리는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을 누르고 ‘손 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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