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방 공립고 야구부 103년 만의 결승 진출에 열광

올해 100회 여름 고시엔 대회
가나아시농고 이변 일으키며 결승 진출
지방 공립고교 활약에 일본 전역에서 인기
지방 밀착 일본 고교야구 대회 인기 여전
인구 감소와 선수 혹사 논란 등도 있어

일본 아키타현 가나아시농업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2018년 ’여름 고시’엔 경기에서 승리한 뒤 함께 교가를 부르고 있다. <엔에이치케이> 갈무리

“잡초의 저력을 보여줘~~!”

21일 ‘여름 고시엔’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열린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 1회 초 1번타자 스가와라 다쿠가 등장하자 고시엔엔 귀청을 찢어버릴 듯한 거대한 함성과 함께 보라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보라색은 이번 대회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잡초 군단’ 가나아시농업고등학교의 유니폼 색깔이다.

가나아시농고는 일본 도호쿠 아키타현에 있는 현립 학교다. 일본에서 도호쿠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3·11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피해를 입은 소외되고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야구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도호쿠 지역 고등학교는 올해로 100회째를 맞는 고시엔에서 단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아키타현의 학교가 여름 고시엔 결승에 진출한 것도 1회 대회인 1915년 이후 103년 만이다. 와타나베 쓰토무 교장은 결승 진출이 결정된 20일 “아키타 농고가 결승 진출이라니 꿈이다. 꿈”이라며 울먹였다.

시골의 작은 농고가 전국 강호들을 연파하고 결승에 오르자 도호쿠는 물론 일본 열도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결승까지 모든 경기가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3회전 요코하마고(가나가와현 대표)와 경기는 역전 스리런 홈런으로 신승을 거뒀고, 준준결승 오미고(시가현 대표)와 경기에선 9회 말 스퀴즈 번트를 대고 주자 두명이 득점하는 짜릿한 플레이를 통해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일본 방송들은 결선 5경기 모두에서 완투승을 거둔 3학년 에이스 요시다 고세이의 시속 150㎞대 직구를 앞 다퉈 소개하는 중이다.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결전의 그날’을 맞아 일본항공(JAL)은 고시엔으로 응원가는 아키타 주민들을 위해 21일 아침 아키타 공항과 오사카 국제공항을 잇는 특별편을 편성했다. 결승전이 시작된 오후 2시 아키타역에 설치된 판넬에는 “잡초혼으로 우승” 같은 응원 메시지가 가득했다. 인터넷에는 이 학교의 분전을 “헤이세이(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의 마지막 ‘하쿠쇼 잇키’(농민 봉기·잡초들의 반란이란 의미)”라 부르고 있다. 그 덕에 관람객도 급증해 올 여름 고시엔 입장객 수는 결승전을 제외하고도 사상 최고였던 1990년보다 많은 92만7000명을 기록했다.

일본 고등학생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고시엔에선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할 재정적 능력이 있는 도시 사립학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결승전 상대인 전통의 강호 오사카토인이 대표적인 예다. 이 학교엔 오사카 뿐 아니라 사가현과 나라현 그리고 홋카이도 출신까지 포함돼 있다. 현립 학교인 가나이시농고 입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21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소식을 전한 일본 신문들.

고시엔은 원래 프로야구 한신타이거스 안방 구장 명칭이다. 봄에 열리는 ‘선발고교야구대회’와 여름에 개최되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1924년부터 이 구장에서 열려 두 대회를 고시엔이라 부른다. 출전 학생들은 경기에 진 뒤에도 구장 흙을 통에 담아 기념으로 가져갈 만큼 출전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 경기에 이기면 선수 전원이 허리를 무리하게 뒤로 젖혀가며 자랑스레 교가를 부른다. 1918년 ‘쌀 소동’과 태평양전쟁 기간이었던 1941~45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열려 고시엔을 ‘평화의 상징’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이번 대회엔 지역 예선까지 포함해 전국 3781개 고교가 출전했다. 한국 고교야구팀 수가 70여개 정도인 것에 비해서 저변의 차이가 크다.

기대와 달리 가나아시농고는 이날 결승에서 오사카토인에 2-13으로 크게 패했다. 5연 속 완투에 지친 탓인지 에이스 요시다는 5회 12실점 뒤 강판됐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요시다가 중심이 된 가나아시농고가 끈질긴 야구를 선보인 끝에 당당히 준우승했다”고 평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가나아시농업고등학교가 누리집에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안내문과 함께 응원해주셔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보라색 옷을 입은 이들이 가나아시농업고등학교 응원단의 모습이다. 가나아시 농고 누리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