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룬 김숨 작가의 소설 <한 명>의 일본어 번역판. 삼이치쇼보 제공
“일본 남성이 읽기에는 고통스러운 책이지만,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출간을 결심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김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이 이달 중순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어판을 출판하는 삼이치쇼보(三一書房)의 고쓰가이 이사오 대표는 3일 도쿄 진보초 사무실에서 “최근 일본 역사수정주의 흐름은 보통 일본인들도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심해졌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가 맺어졌다는 것만 강조되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명> 번역은 지난해 끝났지만 책을 선뜻 출판하겠다고 결심하는 일본 출판사는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삼이치쇼보였다. 삼이치쇼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직후인 1945년 10월 창업됐다. 출판사와 같은 건물에서 재일동포가 운영하던 헌책방 ‘삼이치쇼텐’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 헌책방 이름 삼이치는 ‘3.1운동’에서 따온 것이다.
삼이치쇼보는 태평양전쟁 때 중국에서 징집된 일본인이 전쟁의 잔학성과 비참함을 체험하는 내용을 담은 베스트셀러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을 출판하는 등 주로 인문사회 서적을 일본 사회에 소개해왔다.
1990년대 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된 뒤부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책들도 여러 권 출판했다. 고쓰가이 대표는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새는 인터넷에서 우리 출판사를 ‘극좌’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례가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6년 ‘위안부 증언’ 시리즈 첫번째 작품으로 <한 명>을 펴낸 김숨 작가.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단 한 명만 남은 시점을 상정한 소설이다. 지난 3년간 한일 과거사를 공부하며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구술해온 김숨 작가의 첫번째 ‘위안부’ 관련 작품이다. 그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책, 기사, 영상 다큐멘터리 등을 섭렵해 위안소의 끔찍한 실태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김 작가는 <한 명> 일본어 번역판에 실린 ‘일본 독자 여러분에게’라는 글에서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떠나 폭력적 역사의 와중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받아야 했던 고통에 대한 것이었다”며 “이 고통을 자비의 마음이라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덕으로 승화시킨 작고 위대한 영혼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는 최근 ‘위안부’ 시리즈 3편의 신작을 잇따라 냈다. 위안부 소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형식의 소설 <흐르는 편지>와 생존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등이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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