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개각 뒤 도쿄 관저에서 각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가을 임시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겠다’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개헌 일정을 내년으로 미룰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로 최장수 총리의 길을 열며 기세를 올렸지만, 불과 보름 만에 난기류를 만난 모양새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3일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 최고 고문인 고무라 마사히코 전 부총재와 만나 ‘개헌안을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4일 보도했다. 고무라 전 부총재가 가을 국회에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고 참의원과 중의원에 주요 내용을 설명하는 정도까지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취지로 말하자 “그렇게 해도 좋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지지통신>은 아베 총리가 ‘개헌안 가을 제출’ 방침에서 후퇴한 것이라 짚었다. 그는 지난 8월 “언제까지고 (개헌) 논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음 국회 때 자민당 개헌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의견 수렴 과정을 가속화하겠다”며 추진 일정을 못박은 바 있다. 지난달 총재 선거 직전까지 ‘개헌안 가을 제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아베 총리가 한걸음 물러난 것은 지난 2일 개각과 당 주요 보직 인사에 대한 여론의 차가운 반응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개헌 추진을 위해 우익적 사상을 공유하는 측근들을 대거 전진 배치했다. 특히 내각보다 당 인사가 눈에 띈다. 문부과학상 때 역사 왜곡 교육을 주도한 시모무라 하쿠분을 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고노 담화의 뼈를 빼버려야 한다(무력화해야 한다)”고 말했던 하기우다 고이치 간사장 대행은 유임됐다. 핵 무장을 주장하고 방위상 시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물의를 일으킨 이나다 도모미를 당 필두(수석) 부간사장으로 임명했다. 개헌안 국회 제출권을 지닌 당 총무회장엔 지난 5년간 아베 내각을 지탱해온 ‘측근 중의 측근’ 가토 가쓰노부 전 후생노동상을 배치했다.
여론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3일 진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개각에 대한 실망감으로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5%포인트 하락한 50%(비지지율 42%)를 기록했다. 개각에 대한 부정 평가가 44%로 긍정 평가(28%)를 크게 웃돌았다. 부정적 평가 이유는 “파벌의 뜻에 좌우됐다”(26%)가 가장 많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8월 개각 땐 자신을 비판해온 노다 세이코 의원을 총무상, 정치적 결이 다른 고노 다로(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를 외무상으로 발탁했다. 이번엔 이런 ‘흥행 요소’를 찾을 수 없다.
개헌에 대한 여론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교도통신>이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이 개헌안을 가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반대(48.7%)가 찬성(36.4%)보다 많았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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