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하교길에 유괴된 뒤 살해된 7살짜리 초등학교 1학년 여자어린이가 다니던 도쿄 북쪽 이마이치시의 한 초등학교 교실. 주인을 잃은 책상 위에 지난 5일 꽃다발만이 쓸쓸히 놓여 있다. 이마이치/AFP 지지 연합
유괴살해 사건 2건 잇따라…등하교길 자녀 보호 초비상
사람 많은 길로 통학로 바꾸고 순찰에 보호시스템 도입도
사람 많은 길로 통학로 바꾸고 순찰에 보호시스템 도입도
“살려주세요~” “아직 소리가 작아. 다시 한번” “살~려~주~세~요” 지난 5일 일본 도치기현 이마이치시 한 초등학교 체육관. 교사들이 전교생을 모아 놓고 발성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유괴범을 만났을 때 주위에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연습이다. 학교장은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인적이 드문 곳에서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달아나라고 학생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지금 일본에선 등하교길 자녀 보호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마이치시 등 2곳에서 최근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2명이 잇따라 유괴돼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참극의 연속=지난달 22일 히로시마시 아키구 한 주택 앞 빈터에서 이상한 골판지 상자가 발견됐다. 안에는 부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여학생이 숨진 채 들어 있었다. 경찰은 일본계라는 페루인 후안 카를로스 피사로 야기(30)를 범인으로 체포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 계단 입구에서 이 여자 어린이를 목졸라 숨지게 한 뒤, 상자에 넣어 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살해 동기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페루에 두고온 딸 생각이 나 이 어린이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그가 지나가는 애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간단한 단어 외에는 일본어 구사가 어려운 그는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심한 고독감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졌다. 2일에는 이바라키현 히타치오미야시 야산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주검이 발견됐다. 흉기에 찔려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전날 오후 동급생 3명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다 Y자형 갈림길에서 헤어진 직후 살해돼 65㎞나 떨어진 이곳에 버려졌다. 갈림길에서 집까지 1.2㎞의 길은 숲이 우거지고 평소에도 인적이 드물다. 갈림길까지 할머니가 마중나올 때가 많았으나 이날은 그 혼자였다. 경찰은 이 어린이의 당시 차림을 담은 전단을 배포하고 목격자를 찾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라시에서 일어난 1학년 여자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들 사건이 발생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고심하는 일본 사회=정부와 정치권은 대책 마련에 본격 나섰다. 문부성은 6일 전국 교육장회의를 열어 통학로를 학기마다 점검하는 등의 구체적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통학로는 교통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때문에 자동차가 적게 다니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제는 되도록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로 바꾸도록 했다. 또 저학년들이 고학년과 집단 하교를 할 수 있게 하교 시간을 조정하도록 했다. 지자체와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쓰노미야의 한 학교는 5일부터 교직원들의 방범순찰을 시작했다. 하교 시간에 학교시설의 수선·정비를 담당하는 직원 49명이 하루 10명씩 조를 짜 공용차로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오사카의 시립초등학교에선 내년 2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거리보호시스템’을 시험 실시한다. 어린이에게 IC태그(전자식별표)를 나눠주고, 감지기가 내장된 자동판매기를 통학로에 설치해 어린이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다. 어린이가 이곳을 통과하면 광통신선과 무선으로 연결된 관리센터에서 보호자에게 메일이 전달된다. 또 비상시에 어린이가 자판기 부근에서 긴급연락장치의 버턴을 누르면 관리센터에 통보된다. 오사카 사립학교에선 지난 6월부터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자체와 학교의 통폐합으로 원거리 통학 학생이 늘어난 지방에선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많은 만큼 통학길 보호에 고령자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에선 그동안에도 방범벨 부착 등 어린이 유괴방지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도입해왔다. 그렇지만 어른이 동행하지 않는 한 어린이가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보호할 방법은 없어 학부모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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