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마 야스아키 도쿄대 명예교수. 사진은 2007년 촬영 당시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일본의 전쟁책임을 연구하고 실천적 시민운동을 했던 오누마 야스아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16일 신우암(소변의 이동통로인 신우에 생기는 암)으로 숨졌다고 19일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향년 72.
오누마 교수는 도쿄대 법학부 재학 시절부터 재일조선인 지문 날인 거부 운동과 사할린 잔류 조선인 귀환 운동에 참여했다. 국제법학자인 그는 1970년대부터 일본의 전쟁 책임 연구에 집중했으며, <전쟁책임론 서설>, <도쿄재판과 전후 책임의 사상에> 같은 책을 썼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원칙론 대신 외교적 타협점을 찾자는 현실론에 기울었다.
한국과 관련된 그의 대표적인 실천적 활동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1995년 만든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 여성기금)에 이사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기금은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200만엔의 위로금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 기금을 사용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겐 법적 책임이 없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이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기금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결국 이 기금을 수령한 한국인 피해자는 230여명 가운데 60여명에 불과했다.
그는 일본의 패전 70년을 맞는 2015년 8월엔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등 미래 세대의 (일본)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아베 담화’가 나오자 국제 정치학자 70여명과 함께 비판 성명을 냈다. 학자들은 성명에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위법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누마 교수는 2007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나는 일관되게 애국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본은 전후 60년간 평화주의를 신봉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탈각을 주장하는 ‘전후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1930년대부터 45년까지의 일본은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인 압도적 다수의 신조”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 여성기금에 대해서는 “가장 좋은 형태는 정부가 정식으로 절반을 내고, 국민이 절반을 내서 종합적인 전후 보상기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당시 정치 상황에서 어려워, 차선책으로 민간모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생각해냈다. 정부가 돈으로 배상하고 국민들은 완전히 무관심한 것에 비해 훨씬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누마 교수는 도쿄대 대학원 교수를 2009년 퇴임한 뒤 2016년까지 메이지대 특임교수로 재직했다. 지난해에는 우쓰미 아이코 게이신여학원대 명예교수,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와 함께 일본평화학회 평화상을 받았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