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일본 미쓰비시가 전쟁 중 강제노동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0만위안(약 1600만원)의 사죄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을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한 피해자의 아들이 아버지 영정사진을 든 채 울면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일본 쪽이 반발하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이 일부 중국인들에게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보상한 사례가 있어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발적 배상·사과 제안도 나오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은 2014년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중국에서 소송을 낸 뒤 3765명에게 1인당 10만위안(약 1600만원)을 지급하는 화해 조처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재판상 화해가 마무리된 경우는 11명에 그치고, 나머지 협의가 진행 중이다. 또 니시마쓰건설은 중국인 183명에 대해 1억2800만엔을 화해금으로 중국 민간단체에 지급하고 사죄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하면서도 니시마쓰건설에 “피해 구제 노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1972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때 “중국 정부는 양국 우호를 위해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를 이유로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마저 부인하면서도 화해 형식으로 보상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식민지배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8년 제정한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적법 행위로, 피침략국 중국과 사정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중국인 및 연합군 포로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사과·보상 의사를 밝히면서도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하지만 일본 시민단체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중국은 교전 상대, 한국은 식민지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 모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기본으로 한 조약을 통해 (전후) 처리를 했다”며 한반도 출신만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일철주금이 위로금 성격의 돈을 한국인 쪽에 지급한 적이 있기는 하다. 이 업체는 1945년 미군 포격으로 제철소에서 사망한 한국인 11명의 유족들에게 97년에 각각 200만엔의 ‘위령금’을 줬다. 유족들이 같은 사고에 일본인들만 ‘위령금’을 준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내자 ‘예외적’ 위로금을 준 것이다.
사과·보상을 하려 해도 아베 신조 정부가 가로막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피해 회복 재단 설립도 거론되나 역시 일본 정부의 태도가 문제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자민당 의원들이 31일 회의에서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며 한국 대법원을 성토했다고 보도했다.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상은 “국제 상식에서 있을 수 없는 일”, “한국은 국가의 몸을 갖추지 않아 한국에 투자하는 기업이 적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 기업도 어느 정도 보상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보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애매하게 덮고 넘어간 1965년 체제의 모순이 터진 것”이라며 “한-일 관계 냉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다만 일본도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와 관련해 한국과 협조해야 하니까 수위 조절을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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