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 변호인들이 12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와 피해자 4명의 사진을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 김민철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국 변호인들이 12일 대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러 일본 도쿄의 신일철주금 사옥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변호인들과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지난달 30일 나온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협의하려고 이날 오전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피해자 4명(3명은 별세)의 사진을 앞세우고 사옥에 들어섰다.
신일철주금은 하청업체인 경비회사 직원을 통해 면담 자체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요청서’라도 본사 직원이 와서 가져가라고 요구했다. 경비원은 요청서를 전달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게 “아즈카루(받아놓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동행한 통역은 “(반드시 전하겠다는 뜻인지) 한국어로 통역하기 곤란하다”며 난감해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기다리고 있던 100여명의 기자들에게 “방문 의사는 여러 번 미리 알렸다. 신일철주금은 비겁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임재성 변호사(왼쪽 두번째)가 기자들에게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신일철주금에 전달하려 한 요청서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확정됐다. 따라서 구체적 배상 이행 방법을 협의하려 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신일철주금은 경비원에게 “한국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 및 일본 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문을 대독시켰다.
임 변호사는 “신일철주금이 배상 이행 의지가 없다고 본다.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에) 압류 절차를 밟겠다.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과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합작한 회사의 주식을 압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은 변호사는 “압류 자산을 현금화하려면 따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압류 절차 뒤에도 시간이 있으니 신일철주금은 배상 이행 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신일철주금 방문에 동행한 김민철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은 “우리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신일철주금의 강제노동) 피해자와 유족만 180여명이 있는데, 이들을 상대로 추가 소송 관련 설명회를 열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신일철주금 사옥 앞에서는 오전 9시께부터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배상에 임하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2012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뒤 일본 활동가들은 한 달에 두 차례씩 배상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돌렸다.
신일철주금은 6년 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뒤 주주총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법률은 지켜야 한다”며 확정판결을 수용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에는 “정부의 대응 상황 등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배상 불가 방침을 따를 뜻을 나타냈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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