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이 일본을 덮친 지난 7월 도쿄신국립경기장 건설 현장에 놓인 온도계가 바닥의 열까지 받아서 섭씨 43.6도를 기록했던 모습. 도쿄신국립경기장 건설 현장은 장시간 노동과 폭염 등으로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그동안 나왔다. AFP 연합뉴스
“동료들과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미래라는 바람”
“열심히 일하다가 흘린 땀을 음미하자. 언젠가는 반드시 기쁨의 눈물로 바뀔 것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주경기장인 도쿄신국립경기장 건설현장에 태평양전쟁 시절 노동 가요를 연상시키는 노래가 작성됐다고 <도쿄신문>이 17일 전했다. 신국립경기장 건설 현장은 지난해 20대 노동자가 과로 끝에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신국립경기장 건설현장에서 이른바 ‘현장의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올해 가을이었다. 가칭 ‘내일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도쿄토건에 지난 10월 중순 이른바 ‘현장의 노래’에 관한 제보가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직장 내에서 현장의 노래를 만들 테니 가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컬트 종교가 연상된다. 기분 나쁘다”고 제보했다. 실제 현장에서 노래가 흘러나온 적도 있다. ‘파워하라’(직장 내 권력형 괴롭힘) 제보도 같이 들어왔다. “국가 프로젝트에 참가하니 고맙게 일하라”는 말을 관리자에게 들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일본 근대사 연구자인 쓰지다 마사노리는 <도쿄신문>에 “이 노래는 태평양전쟁 때 (군부가) 많이 만든 ‘후생음악’과 비슷하다. 후생음악은 무기 제조 공장이나 광산 같은 곳에서 부르게 한 노래다. 군부가 신문을 통해서 가사를 모집하고 프로 작곡·작사가가 완성했다. 이번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사 내용도 후생음악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노래로 무언가를 강조할 때는 뒤에서 무언가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 신국립경기장 건설 현장 노래에는 사람과 긍지. 동료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일하자는 느낌은 들지만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노래 부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도쿄토건은 지난달 이 노래가 노동자들 뜻과 부합하지 않으니 건설업체를 지도해달라고 발주처인 일본스포츠진흥센터에 요구했다. 도쿄신국립경기장 건설을 수주한 다이세이건설은 “(하청업체들) 직장회에서 현장 기록 영상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어서 배경음악(BGM) 선정도 검토했다. 노동자에게 ‘현장의 노래’를 부르게 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도쿄신국립경기장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해 3월 당시 23살이던 하청업체 소속 남성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현장의 가혹한 노동환경이 문제시됐다. 이 노동자가 자살하기 한달 전 잔업시간은 월 약 190시간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 노동자 자살 원인 과로에 있다고 보고 산업재해라고 인정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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