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하는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한 것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 구체적 (대응) 조처를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6일 <엔에이치케이>(NHK)의 ‘일요 토론’에 출연해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변호인단의) 압류 움직임은 극히 유감스런 일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문제는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말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데 대해서도 “국제법에 비춰 볼 때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행동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처를 취할 것을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말한 ‘구체적 조처’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합의한 ‘분쟁해결 절차’에 따른 ‘중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를 보면, 한-일 양국 정부 간에 청구권 협정 관련 분쟁이 있을 경우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서 해결”(3조1항)하고,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땐 “양국 정부가 각각 임명하는 중재위원 1명과 양국이 합의한 제3국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된 중재위가 꾸려지게 된다”(3조2항)고 적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청한 압류 조처가 실제로 취해질 때 정부간 협의를 요구하고, 압류에 따른 자산 매각 등으로 일본 기업의 손해가 현실화하면 중재위를 설치해 중재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카드도 꺼내들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5일 “일본 정부는 양국 간 협의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엔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청하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중재위 설치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가 진행될 수 없다. 우선 청구권협정과 함께 합의한 ‘분쟁의 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에서 “양국이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해 해결을 도모한다고 명시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 정부가 제소하려 해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이런 요구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국내 여론을 환기하고 국제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계산된 대 한국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압류 조처 등과 관련해 일본과의 외교적 협의는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정부간 협의를 요청하면, 먼저 충분히 관련 내용을 검토한 뒤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시민단체에선 한-일 정부, 대법원 판결로 배상의 의무를 지게 된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한-일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 삼아 만들어진 포스코와 같은 한국 기업 등 4자가 모여 강제동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재단 설립을 통한 해결책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베 정부가 이를 위한 성의 있는 외교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어 양국은 안전판 없는 장기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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