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9조의 모임’의 창립 멤버인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가 지난 12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93.
우메하라는 1925년 3월 미야자키현 센다이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학자이자 고대사 연구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다 2004년 일본 전후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문학자 가토 슈이치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 다른 석학 8명과 함께 ‘9조의 모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9조의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일본 자위대를 이라크 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하려던 무렵이었다. 가토, 오에, 우메라하 등 석학 9명이 9조의 모임을 만들자고 호소하자 일본 전국에서 시민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현재 9조의 모임은 일본 헌법을 수호하는 일본 내 가장 큰 시민운동 단체로 성장해 있다. 그로 인해 9조의 모임은 한때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우메하라가 헌법 9조 수호 운동에 힘을 합친 것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전쟁 체험 때문이다. 그는 1945년 교토대 철학과 입학 뒤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다. 전쟁 기간 중 그의 지인들이 일본 육해군이 벌인 무모한 자살공격인 가미카제 공격 등에 동원돼 숨지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 체험이 전쟁 반대화 평화헌법 수호 운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우메라하는 보수주의자였지만, 일본 헌법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1924년생)와 동 세대 인물이었다. 신타로 역시 도쿄제대에 입학한 뒤 강제징집돼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한 경험이 있다.
우메하라는 교토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철학자였지만 일본 고대사에 대한 독창적 연구로도 유명하다.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과 리쓰메이칸대 교수, 교토 시립 예술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9조 모임 창립에 참여한 작가 사와치 히사에는 <엔에이치케이>(NHK)에 “우메하라가 표면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9조의 모임’ 활동에 임한 적은 없지만, 전쟁 중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었다. 이런 분이 모임 발기인이 되어준 것이 (9조의 모임 창립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 9조의 모임 창립 발기인 7명은 별세했고, 사와치와 오에 2명만이 생존해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