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14일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러시아는 북방영토(일본이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을 부르는 명칭)라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기선 제압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1956년 소-일 공동선언을 기초로 쿠릴열도 남단 4개 섬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고 2차대전 후 70여년 지연된 평화조약 체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외무장관 회담은 이 합의를 바탕으로 한 첫번째 교섭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2차대전의 결과로 쿠릴열도가 러시아의 주권 밑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섬들의 주권은 러시아에 있다는 점은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쿠릴열도는 러시아 영토라는 기본선을 인정하지 않으면 애를 먹을 것이라고 일본에 경고한 것이다.
러시아는 2차대전 막바지에 쿠릴열도 남단 4개 섬 하보마이, 시코탄,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르),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를 점령했다. 소련과 일본은 1956년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소련은 (4개 섬 중)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에 넘겨준다. 단, 실제 인도는 소련과 일본이 평화조약 체결 결론을 내린 뒤다”라고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 보수파들이 섬 4개를 모두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이 일본과 소련의 접근을 견제하면서 2개 섬 반환은 실현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소-일 공동선언을 기초로 한 이번 협상은 2개 섬의 우선 반환이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쿠릴열도 일대의 경제 개발을 노리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일 군사 동맹도 문제로 지적했다. “미국은 일본에서 미사일 방어(MD)를 발전시키려 한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에 안보 위협”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섬들을 돌려받아도 미군기지를 짓지 않겠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최근 총리실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는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이 어떤 문제를 조정하는 데서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일본이 자국 이익에 바탕을 둔 결론을 내릴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노 다로 외상은 회담 뒤 “영토 문제를 포함한 일본 쪽 생각을 명확히 전달했다”며 원론적 발언에 그쳤다.
양국은 22일 모스크바에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가 공언한 대로 “전후 외교의 총결산”을 할 수 있을지는 정상회담을 통해 상당 부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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