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둘째 줄 가운데), 길원옥(맨 앞) 할머니가 지난해 9월28일 일본 오사카 조호쿠 조선초급학교를 찾아 태풍 피해 복구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일본에서 동포들이 지금도 차별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점이 기억에 남네요.”
일본 오사카 조호쿠조선초급학교 고창우 교장은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학교를 찾아왔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 조선학교 문제에 평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2014년 씨앗기금 5000만원을 내놨고,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이 만들어졌다. 지난 9월에는 태풍 ‘제비’로 큰 피해를 본 조선학교를 복구하라며 1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하고 직접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고 교장은 30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할머니가 당시에도 몸이 좋지 않으셔서 2층 강당에 걸어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걸어서 올라가셨다. 2층에는 태풍 피해로 지붕이 뚫린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피해 모습도 일일이 보고 가셨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조호쿠조선초급학교에서 10분가량 유치원과 초급학교(초등학교) 아이들 60여명을 대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리고 꿋꿋이 살아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고 교장은 “할머니가 식민지 시대의 고통이 아직도 일본 땅에서 다른 형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파하셨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10분만 가만히 앉아 있기도 쉽지 않은데, 그날은 아이들이 의젓했다고 했다. 고 교장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고 했다.
조호쿠조선학교는 태풍 피해로 교실 3곳을 사용하지 못했는데, 김 할머니의 후원금 등을 활용해 현재는 모두 복구됐다. 김 할머니의 방문 사진도 교무실에 걸어놓고 방문객들이 오면 보여주고 있다. 김 할머니가 다녀가고 한 달 뒤 고 교장은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할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 가르치겠습니다. 또한 꿋꿋이 살겠습니다. 저 자신도 꿋꿋이 살고, 귀한 조호쿠 아이들에게도 강한 마음과 억센 투지를 갖고 꿋꿋이 생활하도록 함께 성장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했다는 소식에 연말에도 ‘의학이 발전되고 있으니 조금만 견디시라’는 내용의 편지를 다시 보냈다.
이달에는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쓴 편지를 할머니에게 보냈다. 고 교장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사신 분이 김복동 할머니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도 김복동 할머니 아니겠냐. 할머니가 강하고 흔들림 없이 사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암으로 투병 중인 지난해 11월에도 조선학교를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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