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 30여명이 김복동 할머니와 최근 별세한 이아무개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묵념을 하고 있다. 가운데 선 이가 이번 집회를 주도한 박김우기씨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할머니 편하게 쉬세요. 전쟁으로 사람이 존엄을 잃지 않도록 남은 이들이 계속 활동할 테니 안심하세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 발인일인 1일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 30여명이 추도 집회를 열었다. 총련 산하단체인 재일본조선인권협회 성차별철폐 부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김 할머니와 함께 배봉기(1975년 오키나와에서 자신이 처음 위안부임을 밝힌 피해자), 김학순(1991년 처음 자신이 위안부임을 공개 증언한 피해자), 이계월 할머니 등 이미 숨진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섰다. 이들은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날씨에도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하고 배상하라” 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에 참여해 온 후루하시 아야는 “위안부 문제는 역사와 외교 문제이기 전에, 한 사람의 미래를 망가뜨린 문제다. 그리고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꼬집었다. 후루하시는 “10여 년 전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우리가 모두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때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의심이 든다”고도 말했다. 이케다 마키코도 “올해 위안소가 있었던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에 갔었다. 지역 주민 중에는 아버지에게서 위안부 존재를 들은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정부에 들어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하더라”고도 말했다.
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 30여명이 김복동 할머니와 최근 별세한 이아무개 할머니를 추모식을 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박영심(북한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폭로한 할머니), 송신도(재일동포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폭로한 할머니), 김학순(1991년 9월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실명공개한 할머니), 배봉기(1975년 오키나와에서 처음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할머니) 별세한 다른 할머니들의 사진도 들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사진을 들고 쭈그려 앉아 있는 이는 오랫동안 일본의 전후 보상 문제를 연구해 온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얘기도 쏟아졌다. 재일동포 양총자씨는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 우간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김 할머니 때문에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독립편집자인 오카모토 유카도 “최근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전쟁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김 할머니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일본 내 조선학교에 깊은 애정을 표시하며 후원금을 내놨다. 이번 추도회를 주도한 재일동포 활동가 박김우기씨는 “‘할머니가 조선학교에 직접 찾아오셔서 공부 열심히 해서 떳떳한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잊을 수 없다. 조선인 인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추도회는 김 할머니와 비슷한 시기에 숨진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아무개 할머니의 추도회를 겸해 열렸다. 묵념할 때엔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연을 다룬 영화 <귀향>에 담긴 노래 ‘가시리’가 흘렀다. “가시리 가시리잇고/버리고 가시리잇고”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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