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6일 도쿄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인질 사법’에 대한 국제적 비난 때문인가, 돈의 힘인가.
일본 검찰이 구속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108일 만인 6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곤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작업복 차림을 한 채 도쿄구치소에서 나왔다. 그는 대리인을 통해 “큰 시련 중에도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무죄다”라는 성명을 냈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 안팎의 관심을 반영하듯 구치소 앞에는 취재진 수백명이 몰렸다. 일본 방송들은 석방 장면을 생중계했다.
두 차례 보석 신청을 기각한 바 있는 도쿄지방재판소는 전날 매우 이례적인 내용의 보석 결정을 내렸다. 보석금은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일본 사법 시스템에서는 보기 드문 액수다. 곤의 주거는 도쿄도 내로 제한하고 집 출입구에 감시카메라를 달기로 했다. 다국적 배경을 지닌 그가 쓰는 프랑스·브라질·레바논 여권은 압류했다. 증거 인멸을 막는다며 인터넷 사용도 금지시켰고,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휴대폰 사용만 허가했다. 그동안 도쿄지검 특수부가 기소한 사건들 중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면 보석은 거의 허가되지 않았다.
보석 허가는 장기 구속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신경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 초기에는 범죄 혐의가 주목받았지만, 나중에는 일본 형사사법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프랑스 변호사 50여명은 일본의 장기 구속 관행은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일본에서는 유죄 판결이 99%에 이르는데, 보통 자백에 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속된 사람의 심리적 압박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는 게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무죄 청부사’로 불리는 히로나카 준이치로 변호사가 법원이 받아들이기 쉬운 보석 조건을 내건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갇혀있는 도쿄구치소 앞에서 6일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검찰이 곤에게 적용한 혐의는 보수 축소 신고와 특수배임이다. 처음에는 2011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보수를 약 91억엔 축소 신고한 혐의부터 적용했다. 개인적 외환 거래 손실을 닛산에 떠넘겼다는 등의 이유로 특수배임 혐의가 추가됐다. 그는 1월에 법원에서 열린 ‘구속 이유 공개 절차’에서 퇴직 후 받을 보수를 미리 조사해 따로 문서로 적어놨을 뿐 축소 신고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곤의 구속을 ‘사내 쿠데타’로 보는 시각도 일본 법원이나 정부에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근본 배경에는 일본 닛산과 프랑스 르노자동차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언스의 주도권은 르노에 있다. 르노가 1999년 위기에 빠진 닛산과 자본 제휴를 해 닛산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곤은 당시 르노에서 닛산으로 파견됐다. 르노는 현재 닛산 주식의 43%를 지녔지만, 닛산은 르노 지분의 15%만 갖고 있다. 닛산이 가진 르노 주식은 의결권도 없다.
그러나 위기를 벗어난 닛산의 경영 실적이 월등해지면서 불화의 싹이 텄다. 2017년 닛산의 매출은 약 12조엔이었으나 르노는 7조7000억엔에 그쳤다. 이 때문에 닛산에서는 불평등 관계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곤이 양사 경영 통합을 강화하려 하자 닛산 경영진이 그를 축출하려고 나섰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돌았다. 곤이 체포된 지난해 11월19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이 연 기자회견에서도 “쿠데타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곤도 닛산 간부들의 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수감중인 1월에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사이카와 사장에게 지주회사 산하에 닛산과 미쓰비시, 르노를 두는 경영 통합 방안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곤은 닛산이 자신의 부정을 조사하고 나선 것은 “책략이고 반역”이라고 주장했다.
닛산은 다음달 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곤의 이사 자격을 박탈할 예정이다. 하지만 르노와 닛산의 갈등은 양국 정부까지 개입하는 분란으로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