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체포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차가 그의 집 앞에서 출발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각국 검찰 조직들 중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만큼 명성을 자랑하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한번 칼을 뽑으면 누구든 무사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 수사 과정에서 ‘굴욕’의 보석 결정이 나온 데 이어 그를 다시 체포하는 ‘소동’을 벌이면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4일 이른 아침, 곤을 특수배임 혐의로 집에서 다시 체포했다. 닛산의 중동 법인이 그의 지인이 경영하는 오만 업체에 자동차 판촉비로 지급한 1500만달러(약 170억원) 중 500만달러가 곤이 실소유자로 보이는 계좌로 들어간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익명의 검찰 관계자가 “돈 일부가 곤이 사용한 요트 구입비와 곤의 아들이 경영하는 미국 투자법인에 흘러간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11월 곤을 체포하면서 2011~2015년 보수를 축소 신고했다며 횡령과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12월에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의 보수 축소 신고를 혐의에 추가하고, 개인의 외환 거래 손실을 회사에 떠넘겼다는 혐의도 추가했다.
그러나 닛산과 자본제휴를 한 프랑스 르노에서 파견한 경영자 출신인 곤의 구속을 놓고 일본 쪽이 르노의 영향력을 쳐내려는 ‘사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장기 구속 수사로 자백을 받아내는 일본의 형사사법 관행에 ‘인질 사법’이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가운데, 곤은 지난달 6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일본 법조계에서는 기소 전 저지른 비슷한 범죄 혐의가 나중에 추가됐다는 이유로 보석 상태의 피고인을 다시 체포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곤의 변호인인 히로나카 준이치로는 “인질 사법”이라며 “검찰이 증거를 모아 입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추가 기소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국면을 검찰에 유리하게 하려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례적 재체포에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자존심이 배경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사건 피고인이 선고도 전에 풀려난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곤이 수사의 문제점 등에 관해 11일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3일 트위터로 예고한 것도 검찰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곤은 기자회견 예고 이튿날 체포된 것에 대해 대변인을 통해 “닛산 내부의 누군가가 검찰을 오도해 나를 침묵시키려는 시도”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검찰이 새로 발견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곤을 제대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산케이신문>은 검찰 상층부에서 수사 확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수사팀은 ‘중동 관련 문제를 검찰이 설명하지 못하면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며 상부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체포한 소식을 전한 <아사히신문> 지면.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정계 실력자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하며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리쿠르트 스캔들 수사로 정계를 뒤엎었다. 이런 사건들을 거치면서, 도쿄지검 특수부가 거물 정치인들의 명줄과 정계 개편의 키를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록히드 사건 이후 기소한 사건에서 완전한 무죄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불패 신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2010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을 수사했으나 기소에 실패하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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