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오른쪽)이 2016년 생일 때 도쿄에서 축하객들에세 손을 흔들고 있다. 5월1일에 일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옆에 서 있다. EPA 연합뉴스
7일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는 ‘양 폐하(일왕과 왕후)와 문화 교류’라는 이름으로 아키히토(86) 일왕 즉위 30돌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1989년 즉위식 때 사진 등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일본 각지에서는 일왕 부부 결혼 60돌 기념 사진전도 따로 열리고 사진집도 팔리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이달 말 퇴위와 나루히토(59) 왕세자의 다음달 1일 즉위를 앞두고 경축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전범’ 히로히토의 아들인 아키히토 일왕의 인기는 재위 30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1973년부터 한 조사를 보면, 지난해 일왕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응답은 4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호감이 있다’는 응답(36%)을 합치면 77%가 존경 또는 호감을 나타냈다. 호감을 표한 응답은 히로히토 때는 20%대를 못 넘었다.
일왕 부부의 인기 배경에는 시민들에게 다가서는 행보가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피난소 주민들과 무릎을 꿇고 대화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한 그가 평화를 강조해온 점도 호응을 얻었다. 그는 왕세자 시절인 1975년 아버지 히로히토가 전후 한 번도 찾지 않은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2005년에는 태평양전쟁 격전지 사이판에서 일본군 위령비를 참배했다. 이때 한국인 희생자 추념 평화탑도 찾아 묵념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2011년 5월 후쿠시마원전 사고 여파로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일본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있다. 후쿠시마/로이터 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현 일왕이 ‘상징천황’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응답이 67%로, 히로히토 때(1972년·27%)에 견줘 크게 늘었다. 히로히토는 전쟁 책임 추궁을 피하려고 절대권력을 놓고 ‘국가의 상징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자신의 지위를 설정했는데, 이를 아들이 반석에 올려놓은 셈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평화주의는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와도 대비됐다. 그는 4일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서도 “헤이세이(아키히토 치세의 연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반전에 대한 일관된 의지를 밝혔다.
일본 우익을 오랫동안 취재한 독립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는 “나는 천황제에 비판적이지만 헤이세이 천황이 한국과 관련이 깊은 고마신사(고구려의 마지막 임금 보장왕의 아들로 알려진 고약광을 모신 신사)를 방문한 점 등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천황을 존경하는 의식이 많고, 요즘 우익은 오히려 천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키히토의 인기는 군주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를 차단하는 효과도 내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새 일왕 나루히토가 상징천황제의 미래를 맡는다. 그는 아버지가 확립한 모델을 이어갈 뜻을 밝혀왔다. 올 2월 생일을 맞아 한 기자회견에서 “폐하가 하신 것처럼 국민에게 항상 다가가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상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새 일왕이 동아시아 이웃들과의 관계 및 일본의 재무장·우경화 문제에서 자신이 지닌 ‘상징’을 사용할지도 관심거리다. 현 일왕의 우경화에 대한 반응은 소극적 견제 정도였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정치 문제에 관한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아, 그의 가치관을 엿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2015년에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려 하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전쟁 체험 세대로부터 이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외교관 출신인 마사코 왕세자비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라 다케시 일본 방송대 교수는 “지금 천황 부부는 ‘위령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남쪽 섬들만 갔다. 오로지 사이판 등 미국과 싸워 패한 섬들만 갔다. 동아시아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다. 마사코비가 외교적 센스를 발휘한다면 지금 천황이 가지 못하는 곳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사코 왕세자비는 한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하라 교수는 “마사코비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면 나루히토 천황만 부각될 것이다. 이는 우파가 기뻐할 일이다. 헤이세이 천황 부부는 항상 같이 움직였는데, 우파가 보기에 권위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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