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루히토 새 일왕이 즉위한 뒤 맞은 첫 헌법기념일에 “2020년 개헌을 한다는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개헌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개헌 정족수’를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이 결의가 현실화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아베 총리는 헌법기념일인 3일 도쿄에서 열린 개헌 추진단체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의 집회에 보낸 비디오 메시지에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서)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 내가 선두에 서서 책임을 다할 결의를 밝힌다”며 2020년 개헌 의지를 거듭 밝혔다. 아베 총리는 2년 전 헌법기념일에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일본이 새롭게 태어나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0년을 새 헌법이 시행되는 해로 삼고 싶다”며 개헌의 목표 시한을 제시했었다. 이후 자민당은 2018년 3월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9조에 “총리를 최고 지휘감독자로 하는 자위대를 갖는다”(9조2의 1항)는 내용을 추가하는 개헌안을 공개했다.
아베 총리는 새 일왕 즉위와 연호 변경에 따른 축하 분위기에 편승해 개헌을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섰지만, 여론 동향은 차갑기만 하다. 그는 3일치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자민당의 창당 이후 당시(黨是)는 개헌이었다. 그럼에도 당내에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여지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그 근거로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과 2018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도 이를 내걸고 승리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국민을 위해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문화해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게 정치의 역할이고 내 세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3일 도쿄 아리아케 방재공원에서 열린 ‘허용하지 마! 아베 정권 헌법 발의’ 집회 참석자들이 ‘아베 정권 타도’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조기원 특파원.
그러나 일본 국민 다수는 개헌에 반대 입장이 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기념일에 맞춰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에 대한 기운이 높아지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이가 절대다수인 72%(그렇다 22%)나 됐다. 9조 개정에도 반대 의견이 64%로 찬성(28%)을 압도했다.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도 아베 정권 아래서 이뤄지는 개헌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8%로 찬성 31%보다 높았다.
결국,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가 아베 총리가 내건 ‘2020년 개헌’의 실현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해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개헌 정족수인 ‘중·참 양원 모두의 재적의원 3분의 2’를 확보했다. 현재 중의원에선 자민당·공명당이 312석(67.0%)으로 3분의 2를 확보하고 있지만, 참의원의 상황은 아슬아슬하다.
참의원의 임기는 6년이고, 3년마다 절반을 새로 뽑는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참의원 245석 가운데 3분의 2인 164석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립여당과 개헌에 찬성하는 ‘일본유신의 모임’, ‘희망의 당’ 등 다른 야당 의석을 합쳐 올해 선거가 치러지는 124석 가운데 88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개헌세력은 ‘역사적 대승’이라 평가받는 2013년 선거 때도 84석 확보에 그쳤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도 이날 모여 참의원 선거 때 아베 총리의 ‘개헌 정족수’를 깨뜨리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일본 시민 6만5000여명은 도쿄 아라아케 방재공원에서 ‘허용하지 마! 아베 정권 헌법 발의’라는 이름의 개헌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집회 실행위원장 후쿠야마 신고는 집회 마지막 발언에서 “중요한 것은 개헌세력이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헌민주당 등 야당들도 후보 단일화 등을 통해 개헌선 저지를 위한 ‘배수진’을 칠 것으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