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쿠자에 지도부 교체와 도쿄 진입 등 격변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사진은 야쿠자의 입단 의식. <한겨레> 자료사진
오사카 야마구치구미 사상 첫 두목자리 무혈 이양
도쿄 알짜 접수 기세 올려…두목 수감돼 내부다툼 우려도
일본 조폭(야쿠자) 세계에 지각변동 조짐이 일고 있다. 진원지는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다. 두목의 갑작스런 교체와 새 두목의 수감, 도쿄지역 세 확장. 전례없는 사태들이 잇따르면서 조직내 권력투쟁, 다른 조직과의 세력다툼 우려가 고조돼 경찰이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무혈 쿠데타?=지난 7월 오사카에서 발행되는 한 석간 신문의 기사는 경찰을 경악케 했다. 제목은 ‘야마구치구미 6대 두목 결정’이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달 29일 야마구치구미의 교토 총본부에서 중간 보스 100여명이 집결한 가운데 2인자 시노다 겐이치(63·일명 쓰카사 시노부)의 취임이 공식 발표됐다. 두목이 버젓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교체된 것은 처음이다. 16년 동안 조직을 이끈 5대 두목 와타나베 요시노리(64)는 과거처럼 권력이양 과정의 피비린내나는 다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무혈 쿠데타”라는 분석이다. 사태의 발단은 와타나베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야마구치구미 산하 조직의 한 조직원이 경찰관을 오인 사살한 사건과 관련해 와타나베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어 8천만엔의 배상 명령을 내렸다. 야마구치구미는 앞으로 비슷한 판결이 잇따를 것을 우려해 ‘두목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결정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시노다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다는 4월 2인자로 올라선 지 석달만에 권력을 넘겨받았다. 수도 진출=시노다 체제가 들어선 뒤 생긴 가장 큰 변화는 9월 초 도쿄의 폭력조직 고쿠스이카이를 접수한 것이다. 본격적인 도쿄 진출이다. 1980년대까지 야마구치구미는 간토 폭력단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도쿄에는 직계조직은 물론 사무소도 두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도쿄 외곽의 지방조직을 흡수하면서 영역을 넓혀왔다. 이번에 고쿠스이카이 접수를 통해 도쿄 3위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고쿠스이카이는 전체 조직원이 1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긴자와 롯폰기, 니혼바시 등 알짜배기 번화가가 ‘나와바리’(관할구역)다. 세력이 약해 오랫동안 도쿄 최대조직인 스미요시카이와 교쿠토카이 등에 관리권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겨왔다. 고쿠스이카이를 접수한 야마구치구미가 이들 지역을 돌려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대규모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고쿠스이카이는 9~10월 긴자 일대의 관리를 맡고 있는 스미요시카이게 여러차례 나와바리 반환을 요구했다. 위기감을 느낀 스미요시카이가 한때 조직원 대기명령을 내릴 만큼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됐다. 야마구치구미 간부는 “도쿄 폭력단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며 “만약 충돌이 생기면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스의 ‘장기 공백’=격변의 와중에 시노다가 수감되는 뜻밖의 사태가 빚어졌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총포도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노다의 상고를 기각하고 6년형을 선고한 2심판결을 확정했다. 1997년 오사카 한 호텔에서 경호담당 조직원 2명에게 권총과 실탄을 소지하도록 한 혐의다. 그는 지난해 2월 2심판결 뒤 10억엔(약 9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형이 확정되자 지난 5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출두 직전 조직 인사를 단행해 비상체제를 구축했다.
이전에도 두목이 50여일 수감된 사례가 있지만, 시노다의 남은 형기는 5년이 넘는다. 두목이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되는 ‘공백’ 상태는 초유의 일이다. 특히 시노다는 나고야에 근거지를 둔 고도카이 출신인 반면, 야마구치구미의 최대세력은 전 두목의 직계인 야마켄구미다. 그의 수감이 두 산하조직의 주도권 다툼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찰청은 야마구치구미가 고쿠스이카이를 접수한 직후 ‘집중단속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앞으로 1년은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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