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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재일 조선인’ 닫힌 삶에 숨통 틔웠다

등록 2006-01-05 19:22수정 2006-01-06 02:05

5일 오후 제84회 전일본 고교축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와 야스고의 경기가 벌어진 지바현 이치하라린카이 경기장에서 민족학교 학생들과 총련계 동포들이 “이겨라 조고”를 외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5일 오후 제84회 전일본 고교축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와 야스고의 경기가 벌어진 지바현 이치하라린카이 경기장에서 민족학교 학생들과 총련계 동포들이 “이겨라 조고”를 외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총련계 오사카 조고, 일 고교축구대회 8강에 그쳤지만…
제84회 전일본 고교축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전이 벌어진 5일 오후 지바현 이치하라린카이 경기장.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축구팀 선수들은 승부차기에서 상대 팀인 시가현 야스고교에 패하자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선수들의 눈에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오사카 조고 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채 열띤 응원을 벌이던 민족학교 학생과 총련계 동포 3천여명도 잠시 허탈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그동안 선전을 거듭하면서 동포들에게 큰 활력과 자부심을 불어넣어준 선수들에게 “잘 싸웠다”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오사카 조고는 이날도 평소 작전대로 전반에 상대 팀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후반에 총공세에 나섰다. 후반 15분께 미드필더 김유사가 오른쪽 골라인까지 치고 들어가 올려준 공을 공격수 조영지가 골대 안으로 강하게 차넣어 그물을 갈랐다. 준결승·결승전이 열리는 도쿄 국립경기장 진출의 꿈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순간 방심한 탓일까. 후반 32분께 맹렬한 반격에 나선 상대 팀에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조고 선수들은 첫 본선 8강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

야스고에 승부차기로 져

동포들 “그래도 자랑스럽다”

오사카 조고가 이번 대회에 건 바람은 1승이었다. 처음 본선 진출에 성공한 5년 전엔 1차전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4강 문턱에서 애석하게 주저앉았지만 애초 목표는 초과달성했다. 조고가 아주 기량이 뛰어난 팀은 아니다. 특출한 스트라이커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6차례나 정상에 오른 구니미고 등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하고 8강까지 올라온 것은 무엇보다 선수들의 강한 단결력과 투지, 피나는 연습에서 비롯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대회 출전을 봉쇄당한 채 연습경기나 오사카 지방대회에 만족해야 했던 울분이 이번 대회에서 폭발했다. 특히 주장 안태성 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은 동료 선수들의 투지를 더욱 북돋웠다. 민족학교 중학부 축구부원이었던 안 선수의 친동생이 지난해 백혈병으로 숨진 뒤 안군은 동생 몫까지 열심히 싸우겠다며 승리의 집념을 불태웠다. 조고 선수들의 맹렬한 연습을 상징하는 구호는 ‘5·4·3·2·1’이다.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 지난해 여름 내내 그 숫자만큼 운동장을 돌며 비지땀을 흘렸다.

이들의 선전에는 동포들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도 한몫했다. 이들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면서 경기장을 찾는 동포들이 갈수록 늘었다. 지바 지역 동포들은 이들의 숙소로 찾아와 음식을 대접하는 등 자기 자녀를 대하듯 애정을 쏟았다.


조고 축구팀 감독 강민식(35)씨는 대기실에 돌아와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선수들을 달래면서 일본 사회에 조고의 실력을 충분히 각인시켰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힘든 투쟁 끝에 차별의 벽을 깨고 전국대회 출전을 따낸 이들은 어느새 8강을 지나 전국대회 제패를 향해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이치하라/글·사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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