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러-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이유로 다음달로 예정됐던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 75돌 행사를 9월로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렇다면)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할 수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올해 2차 대전 승전 기념행사를 소련 시절 ‘대일본 전승 기념일’이었던 9월3일로 연기한다면, 아베 총리는 참석할 수 없다고 러시아 쪽에 전달했다”고 28일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통상 소련이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 5월9일에 2차 대전 승전 기념일 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 일본을 포함한 각국 정상을 초대했고, 아베 총리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 남단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와 관련해 협의를 진전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행사 연기 개최일로 고려 중인 9월3일은 소련 시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전승 기념일’이다. 소련 붕괴 뒤 러시아에서는 하루 전날인 9월2일을 ‘2차 대전 종전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차 대전 종전 기념일’을 9월2일에서 9월3일로 변경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9월2일과 9월3일은 하루 차이지만 정치적인 의미가 다르다. 1945년 9월2일 일본 정부 대표단은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군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세계적으로 9월2일을 2차 세계대전 공식 종전일로 보는 이유다. 소련은 하루 뒤 대일 승전 기념행사를 연 것을 이유로 9월3일을 공식 종전일로 봤다. 일본은 러시아가 ‘대일 승전 기념일’을 부활시키고 2차 세계대전 승전 행사도 그때 열려는 배경을 의심한다. 쿠릴열도 남단 섬들이 2차 대전 승전의 결과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전후 외교의 총결산’으로 쿠릴열도 섬들의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고 2차 대전 후 러시아와 맺지 못한 평화조약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이 “쿠릴열도 남단 섬들은 러시아가 2차 대전 승전의 결과로 획득한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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