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가 지난 3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감염 폭발 중대 국면”이라고 쓴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영방송 뉴스 앵커 출신인 그는 매스컴 활용에 능숙하다. 도쿄/EPA 연합뉴스
간토(관동) 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들에 대한 추도사 송부를 거부하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67) 도쿄도지사가 7월5일 치를 예정인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굳혔다고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 집권 자민당은 고이케 지사에 맞설 후보를 내지 않을 움직임이고,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의 통일 후보 추천 협의도 난항이어서 이변이 없는 한 당선될 전망이다.
고이케 지사는 아랍어 통역사와 뉴스 앵커를 거쳐 정치인이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및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인터뷰 통역과 코디네이터를 맡아 유명해졌고, 이후 일본 민영방송 앵커로 일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1992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 중심으로 창당한 ‘일본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자민당에 입당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시절에는 우정(우체국)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선거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가 공천한 이른바 “자객”으로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선명한 대결 구도를 만들고 매스컴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그의 정치 수법은 고이즈미 총리의 ‘극장 정치’와 닮았다는 평가도 있다. 2016년 8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자민당도 탈당했다. 2012년 말 2차 집권 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아베 정부이지만,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 추천 후보가 고이케에게 패배했다.
고이케의 정치적 성향은 우파적이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사과와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도 미국을 방문해 이를 저지하려 했다.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며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2017년 중앙정치에 다시 뛰어든 적이 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시 고이케는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는 민진당 의원은 자신이 만든 신당 ‘희망의 당’ 합류 과정에서 “배제한다”고 말했고,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중의원 선거에서 ‘희망의 당’은 전체 465석 중 50석 획득에 그쳤다.
고이케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 사태 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초 시작된 긴급사태 기간에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언론 노출 빈도가 높아졌고, 방역에 소극적인 아베 총리와 적극적인 고이케 도지사라는 구도도 만들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향후 일본 중앙 정치에도 다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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