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시오리가 지난 2018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때때로 죽게 한다. 더 이상 말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31)가 2차 가해를 호소하며 만화가 등 3명에 대해 770만엔(한화 약 85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면서 강조한 말이다.
9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이토의 고소장을 보면, ‘하스미 토시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만화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토를 상징하는 여성의 그림을 그리고 “시험 삼아 거물 기자와 자 봤어”, “배게영업 대실패” 등의 내용을 올려 논란이 됐다. 또 이토가 성폭행 사건에서 승소한 뒤에도 눈물을 글썽이는 여성을 그려 “재판이란 것이 간단해요! 카메라 앞에서 울고 재판관에게 보여주면 된다”는 등의 글을 써서 트위터에 올렸다. 이 만화가의 팔로워는 4만명이 넘는다.
이토는 지난 8일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얼굴과 실명을 밝히고 성피해를 호소했는데, (만화가가 올린 트위터 글은) 원한이나 금전 목적의 허위 호소라고 단정하고 있다”며 “너무나 악질이다. 성 피해에 이은 ‘2차 피해’라고 할 수 있는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이토는 소송까지 가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이토는 “(트위터 글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싸우는 것이 괴로웠다”며 “소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을까? 안 보면 된다고 자신에게 타일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트위터 글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점점 확산되고 있다”며 “지금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러한 내용을 올려도 좋다는 것이 된다”며 소송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이토는 소송에 앞서 지난 5월 2차 가해를 한 만화가에게 글을 삭제하고 사죄 할 것을 요구했지만, 만화가는 유튜브 방송에 나와 사죄를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토는 만화가와 함께 이 내용을 리트윗 한 네티즌 중 2명에 대해서도 “(만화가의 내용을) 찬동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언론인 지망생이던 이토는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티비에스>(TBS) 방송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12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 2015년 일어났는데, 당시 검찰은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토는 2017년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자 최초로 신분을 공개하고 소송에 나섰다. 이 시기 전 세계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됐던 만큼, 이토는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떠올랐다. 가해자로 지목된 야마구치는 아베 총리를 주인공격으로 등장시킨 <총리>라는 책을 쓰는 등 아베 총리와 가까운 기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티비에스>를 퇴사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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