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97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추도비에 헌화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영향으로 일반 참가자 없이 유튜브 중계로 진행됐으며, 헌화도 행사 관계자가 대표로 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과 ‘준법 서약서’ 논란으로 개최에 우여곡절을 겪은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97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 실행위원회’(이하 실행위)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취재진과 행사 관계자만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열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예년과 달리 일반 참가자는 받지 않는 대신 유튜브를 통해 행사를 중계했다. 해마다 수백명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 줄을 서서 국화를 놓았지만, 올해는 대표 몇명이 헌화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야카와 야스히코 실행위원장은 이날 추도식에서 “학살로 존엄한 생명이 빼앗긴 역사적 사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두번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식> 등 소설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소설가 히라노 게이이치로는 “죄없이 숨진 조선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는 일본 사회가 진실한 공생을 할 수 없다”는 서면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도 아메리칸대학 피터 커즈닉 교수와 공동으로 서면 메시지를 보냈다. 스톤 감독은 “어느 나라든 과거와 마주하기는 어렵다”며 “여러분처럼 진실한 역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이런 증오에 바탕을 둔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여러분과 함께 결의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96주기 추도식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순자씨가 소복을 입고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넋을 위로하는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올해 97주기 행사는 일반 참가자가 없이 열렸으며 인터넷으로 중계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실행위는 1974년부터 추도식을 열었으나, 우익 성향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가 재임 중인 도쿄도가 지난해 말부터 추도식을 열려면 일종의 ‘준법 서약서’를 내라고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같은 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우익단체 ‘일본 여성의 모임, 산들바람’ 쪽과 똑같이 서약서를 내라는 것이었다. 이 우익단체는 2017년부터 추도식 방해 집회를 열고 있는데, 도쿄도가 우익단체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와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같은 선상에서 규제한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결국 우익단체가 원하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방해에 힘을 실어주는 조처라는 지적이었다. 일본 시민 3만여명이 도쿄도 조처에 반대하는 성명에 서명했고, 도쿄도는 지난달 3일 서약서 제출 요구를 철회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첫번째 당선 이듬해인 2017년부터 역대 도지사들이 해마다 보냈던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으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도쿄도는 최근 이 우익단체 집회에서 “불령(조)선인에 의해 살해되고 가옥이 불탄 수많은 일본인” 등의 발언이 나온 것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라고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으나, 이 단체의 올해 집회 자체는 허가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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