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교도/로이터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정부에 정책을 제언하는 독립적인 기관인 ‘일본학술회의’ 회원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아베 정부 법안에 반대했던 학자 6명을 배제시킨 것과 관련해 학계, 언론, 온라인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학술회의는 2~3일 잇따라 회의를 열어 6명이 거부된 이유를 총리가 직접 설명하고, 이들을 다시 임명해달라는 요청서를 내각부에 보냈다고 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들은 7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스가 정부가 “독재를 향해 가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일 스가 정부가 학술회의 신규 회원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이 단체가 추천한 후보 105명 중 6명을 탈락시키고 99명만 인사 결재를 내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학술회의가 추천한 인사가 대부분 임명됐는데, 이번에 이례적으로 6명이 거부된 것이다. 특히 이들 6명은 아베 정부 때 추진한 안전보장 관련 법과 특정비밀보호법, 조직범죄처벌법 개정 등에 강하게 반대한 학자들이다. 회원 임명에서 배제된 오자와 류이치 도쿄지케이카이의대 교수(헌법학)는 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2015년 국회에서 안보법제가 위헌이라고 지적한 것이 원인이라면 이것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침해”라며 “독재를 향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자들과 일반 시민들도 지난 3일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집회를 열어 “학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입헌주의의 위기”라고 호소했다.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는 ‘학술회의 정치 개입에 항의한다’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단 글이 이날까지 수십만건 올라왔다.
학술회의 회원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총회에 참석한 구리타 사다코 교수(지바대)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부터 말을 듣지 않는 관료는 건너뛰어도 좋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학술회의의 특별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도 지난 2일 학술회의에서 배제된 6명 중 3명을 국회로 불러 의견을 듣는 등 적극 대처할 방침이다.
일본 언론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3일 사설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한 이들 학자들의 임명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연구자, 학술회의의 앞으로 움직임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은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학술회의 임명 거부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지난 3일 스가 총리가 개최한 기자단과의 식사 겸 간담회에 항의성 차원에서 불참했다.
일본 학술회의는 1949년 설립돼 국비로 운영되지만 독립적인 특별기관으로 ‘학자들의 국회’로 불린다. 1950년·1967년·2017년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연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화학, 물리학, 사회과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학술회의 회원은 210명으로 임기는 6년이며 3년마다 절반씩 교체된다. 일본학술회의법 제17조에 따라 연구 또는 업적이 있는 학자 중에서 후보자를 선발해 추천하면 총리가 임명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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