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어렵게 시작된 대화 분위기를 이어 가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이 16일 출범 두 달을 맞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겐 정치‧외교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의 측근인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13일 밤 일본 민영방송 <비에스 후지> 생방송에 나와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이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외교의 활로를 찾는데, 도쿄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라며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니카이 간사장은 일본을 방문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8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12일)을 잇달아 만났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로 냉기류가 돌던 지난해 8월에 니카이 간사장은 방일했던 한국 국회의원단 면담을 한 차례 연기한 뒤 취소한 바 있다.
니카이 간사장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처럼 새로운 한일관계의 방향을 담자는 ‘문재인-스가’ 공동 선언 구상에 대해서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노선을 잘 활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제동원 문제에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이웃 나라인 한국과 어떻게 해결할지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며 “대화로 정리해야 하고, 국민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스가 총리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한-일 관계 개선이 도쿄올림픽의 주목도를 올리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준다면 스가 총리에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대화 분위기가 본격화된 이유로 분석된다. <도쿄신문>은 “스가 정부의 핵심 과제인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조력은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오른쪽 두번째) 의원 등이 지난 13일 오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관저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범 두 달을 맞은 스가 정부의 국정 상황은 좋지 않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고 ‘일본판 블랙리스트’인 일본학술회의 회원 6명 임명 거부로 내각 지지율이 하락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 직후 60~70%대 고공행진을 하던 스가 정부의 지지율이 최근에는 50~60%대로 떨어졌다. 중의원 해산과 선거가 변수가 되겠지만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지 못할 경우 내년 9월 임기가 끝나는 스가 총리의 재선은 불투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년 7월 예정된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로 대폭 축소된 채 치러질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점차 건강을 회복하면서 정치적 행보를 시작해 ‘총리 재출마’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스가 총리에겐 부담이다.
한-일 사이에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정부는 우익 세력과 국민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며 사과나 배상을 거부해왔다. 국민 여론도 이런 정부 입장을 지지해왔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국민의 70%는 “납득할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한국 고위 인사들의 방일과 관련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며 “우리로서는 제로(0) 답변”이라고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상태라면 (일본 정부가) 한-중-일 정상 회의 개최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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