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 2월 바그다 시내 사담 후세인 대통령 초상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와구치 도모미. ‘백혈병으로 세상을 피하다’라는 제목의 그의 블로그에 올라 있는 사진이다.
원폭 2세·자위대원·스트립걸·인간방패의·백혈병…
최근 불치병으로 숨진 한 일본 스트립걸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가 일본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사와구치 도모미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백혈병과 싸우다 지난 10일 44살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지난 16일 밤 도쿄 신주쿠의 한 클럽에서는 전 적군파 의장, 우익단체 고문 등 좌우익의 거물들을 포함한 약 100명의 지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원폭 피해를 당한 피폭 2세다. 78년 봄 고교 졸업 뒤 육상자위대에 입대해 4년 정도 근무했다. 그는 2003년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입대 동기에 대해 “보통의 여직원(오피스 레이디)이 되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 자위대 생활에도 따분함을 느껴 그만둔 뒤, 우연한 기회에 스트립걸로 변신했다. 도쿄 시내에 놀러갔다가 “춤 좋아하느냐”며 접근해온 클럽 관계자의 궛속말이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그는 전국을 돌면서 밤무대 스타로 떠올랐다. 이런 생활이 20년 이상 이어졌다.
그러던중 그는 좌우익 인사나 저널리스트, 활동가들 등과 교류하면서 사회인식에도 눈을 떴다. 그에게 또 한번의 인생 반전이 찾아온 것이다. 반전활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 전쯤부터다. 그 때부터 자신이 피폭 2세라는 사실도 밝혔다. 2001년엔 ‘풍속조합 일본당’이라는 이름의 유흥업 종사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 해에 그는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사와구치는 시민단체 집회에 참석해 핵폐기를 앞장서 호소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 2월 세번째 이라크를 방문한 그는 ‘인간방패’의 일원으로 바그다드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렇지만 이 때 이미 그의 몸속에선 병마가 자라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투병생활에 들어간 그는 숨지기 직전까지 블로그에 자신의 투병 일지를 기록해갔다.
그의 한 지인은 그를 “스트립이라는 궁극의 에로스와 피폭 2세·자위대·반전이라는 타나토스(죽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의 양극을 살다간 사람”이라고 평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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