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일본 궁내청 누리집 갈무리
나루히토 일왕의 부인 마사코 왕비가 남편과 나란히 앉아 대국민 발언을 하는 모습이 1일 공개됐다. 왕비가 일왕과 동석해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교도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적응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는 마사코 왕비가 육성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한 것도 지난 2002년 기자회견 이후 처음이다.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이 공개한 왕실 신년 영상 메시지에는 마사코 왕비가 나루히토 일왕 곁에 나란히 앉아 있다. 6분45초 분량의 동영상 대부분이 나루히토 일왕이 말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지만, 마사코 왕비의 발언도 32초가량 담겼다. 동영상 첫머리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여러분 신년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한 직후 마사코 왕비가 바로 이어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나루히토 일왕이 다시 발언하고 마사코 왕비가 말미에 약 30초 동안 “이번 1년 많은 분이 정말 힘드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해가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평온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또 이번 겨울 일찍부터 각지에서 엄혹한 추위나 큰 눈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부디 몸조심해서 지내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상이 자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로 내용 자체는 평이했지만 일본 왕실에 이어진 일종의 금기를 깬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왕실의 영상 메시지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당시 아키히토 일왕이 처음 발표했고, 2016년 8월 아키히토가 퇴위 의향을 표명한 것이 두 번째였다. 두 번 모두 미치코 당시 왕비가 동석하지 않았다. 아키히토 재위 중 신년 메시지도 미치코 왕비는 참여하지 않았다. 나루히토 일왕도 즉위 뒤 첫 신년인 지난해 1월1일에는 혼자서 메시지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반인들이 도쿄 왕궁을 방문하는 신년 축하 행사를 열지 못하는 만큼, 영상에서 부부가 나란히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권위와 전통을 이유로 남녀차별 등 시대와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 일본 왕실이 이번을 계기로 변화하게 될지 주목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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