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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의 국지전 부활?

등록 2010-12-06 11:22

»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우리 해군 고속정(왼쪽)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 서해안 충돌은 꽃게잡이 철에만 일어났다.
»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우리 해군 고속정(왼쪽)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 서해안 충돌은 꽃게잡이 철에만 일어났다.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최근 잇따른 3개월 주기 충돌은 1949년 국지전 확산과 닮은꼴…김정은식 군사주의와 이명박식 강경론이 예고하는 암울한 미래

전면전은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징후가 있다. 한정된 영토·영해·영공에서 제한된 병력이 벌이는 국지전이 먼저 등장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그랬다. 1949년 내내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남북 사이에 전개됐다. 남북의 피해가 적개심으로 무르익은 이듬해 6월25일, 전면전이 시작됐다. 민간인 100만 명을 포함해 적어도 200만 명이 사망·실종한 전쟁이 3년간 이어졌다. 죽은 사람도 살아남은 사람도 1949년의 국지전을 제어하지 못했다. 일단 전면전이 일어나자 어떤 후회도 부질없었다. 반세기가 지난 2010년, 한반도에서 다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투가 반복되고 있다. 또 한 번의 징후가 아닐지, 한반도에 공포가 스멀거린다.

꽃게잡이 철에만 있었던 충돌의 일상화

11월23일, 북한은 연평도를 해안포·방사포로 공격했다. 그 포탄은 지난 1년의 정점이다. 2009년 11월10일,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국 고속정과 교전했다. 한국 정부는 “북쪽 경비정이 반파되어 겨우 돌아갔다”고 승리의 기운에 겨워했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대청해전’으로 부른다. 북한은 방법을 바꾸었다. 두 달 보름 뒤인 2010년 1월27일, 북한은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남쪽 해역에 쏟아부었다. 다시 두 달 뒤인 3월26일, 백령도 부근에서 한국의 천안함이 가라앉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격이라고 단정했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서해에 올해 8월9일, 다시 화약 냄새가 번졌다. 북한의 해안포가 NLL 남쪽 해역을 겨눠 포탄을 날렸다. 두 달이 지난 11월23일, 북한은 해안포·방사포 170여 발을 연평도에 집중 포격했다. 민간인 2명, 군인 2명이 죽었다.

사고 원인에 의문이 제기되는 천안함을 제외하더라도, 북한은 개략 두세 달을 주기 삼아 군사 행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어난 전투함 교전 이후엔 직접 충돌 대신 포격을 택했다. 해안 포격을 시도한 뒤에는 영토 포격까지 감행했다. 일정한 패턴이 생기는 동시에 그 정도가 깊어지고 있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과거에 없던 주기적 군사충돌이 새롭게 출현했다. 이는 ‘김정은식 군사주의’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 포병학과를 다녔다. 북한은 김 부위원장이 “현대군사과학과 기술에 정통한 천재이며, 포병 부문에 매우 정통하고, 입체감과 정확도를 갖춘 군사지도를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후계 공식화 이후 김 부위원장의 첫 공개 활동은 포사격 훈련을 참관하는 것이었다. 김정은 후계 구도의 핵심으로 평가되는 리영호 군 참모총장도 포병 전문가다. 이번 연평도 포격에는 ‘김정은 시대’의 흔적이 강하게 배어난다.

과거에는 달랐다. 서해안의 군사충돌은 6월에만 일어났다. 6월의 서해는 꽃게를 품는다. 꽃게를 잡으려는 남북 어민들은 NLL의 경계를 시험한다. 남북의 전투함이 그 둘레를 지킨다. 그러다 우발적으로 충돌한다. 1999년 6월 이른바 ‘1차 연평해전’은 그렇게 발생했다.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은 3년 전 당한 피해에 앙심을 품은 북이 기습적으로 공격한 성격이 짙다. 다만 그 의도를 꽃게잡이 철에 맞춰 드러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발적 충돌이라는 알리바이를 남기려 했던 것이다.

2009년 11월10일,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국 고속정과 교전했다… 2010년 1월27일, 북한은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남쪽 해역에 쏟아부었다… 8월9일, 북한의 해안포가 NLL 남쪽 해역을 겨눠 포탄을 날렸다.


반면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연쇄적 무력충돌은 꽃게잡이와 전혀 상관없다. 김종대 편집장은 “지난 1년간 약 3개월 주기로 5차례에 걸쳐 무력충돌 사건이 반복됐다. 북은 일단 도발했다가 남쪽이 대응하면 빠져나가고, 그 기운이 가라앉으면 다시 군사충돌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연말까지는 다시 잠잠해지겠지만, 현재의 주기와 상황을 볼 때 내년 초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제 서해 NLL 인근의 무력충돌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변하고 있다. 언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되고 있다. 한반도는 평시 상황에서 준전시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민간 지역을 포함한 영토를 포격해 전쟁 직전 상황을 연상시키는 카드를 쓰면서 북이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수시로 포격을 주고받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처럼 한반도도 국지전과 민간인 사망이 일상화되는 준전시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1949년 남북 사상자 적어도 1천 명씩

1949년에도 한반도는 준전시 상황이었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가 쓴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을 보면, 당시 무력충돌에 대한 남북의 자료가 있다. 북한은 1949년 10월 발표자료에서 “1월부터 9월까지 남한이 432차례에 걸쳐 4만9천여 명의 군경을 동원해 침범했다”고 밝혔다. 남한은 1949년 11월 발표자료에서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이 563차례에 걸쳐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침범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어느 쪽이 먼저 도발했는지 따지는 것은 힘들지만, 남과 북에서 적어도 각각 1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도발에 나선 크고 작은 전투 부대들은 대부분 상대에 의해 궤멸당했지만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1949년 국지전을 대표하는 동시에 최근 상황에 견줄 만한 사건은 ‘292고지 전투’다. 개성 송악산 292고지는 38선 이북의 땅인지 이남의 땅인지 논란이 있었다. 지도마다 그 귀속이 남과 북으로 갈렸다. 1949년 5월4일, 진지 구축 공사를 하고 있던 한국군을 북한군이 기습 공격했다. 한국군이 재탈환하고, 북한군이 반격하고, 한국군이 다시 특공대를 투입하는 등 나흘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 직후 주한 미대사는 이승만을 만나 “선제공격을 자제하라”고 말했다. 신성모 국방장관도 “38선을 침범해 도발하는 (한국) 부대의 지휘관은 군사법정에 세울 것”이라는 명령을 부대에 시달했다. 그러나 같은 달 21일, 더 큰 전투가 벌어졌다. ‘옹진 전투’였다. 역시 38선 경계에 있는 옹진반도 국사봉을 북한군 1개 중대가 공격해 점령했다. 이를 되찾거나 지키려는 전투가 한 달 동안 계속됐다. 한국군은 7개 대대 병력을 동원했다. 미국은 이승만 정부를 제어하지 못했고, 이승만은 군부를 제어하지 못했으며, 지휘관은 일선 군인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거듭된 전투는 적개심과 복수심을 키웠다. 단호한 응징은 더 큰 응징을 불렀다.

충돌은 38선 곳곳에서 일어났으나, 옹진반도·개성·의정부 등 서부 지역이 단골 무대가 됐다. 서울과 평양이 맞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경계선의 불확실성을 빌미 삼고, 서해·서부 지역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1949년은 2010년의 무력충돌과 닮았다. 정 교수는 “1949년 당시 옹진반도를 둘러싼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단호한 응징은 심각한 불행을 낳는다

&raquo; 지난 11월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방문한 사진을 공개했다. 촬영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
» 지난 11월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방문한 사진을 공개했다. 촬영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

국지전은 적의 전력을 탐색하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며, 전면전이 발생할 때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만 이것은 군사논리다. 국지전이 날마다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정치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는 사회·경제적 역량을 전투에 소모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 정치권력이 소모적 국지전을 활용하려 달려들 때다.

한국전쟁을 연구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전면전에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국지전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승만 정권과 김일성 정권이 똑같았다”고 말한다.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해 정권 유지를 꾀하려는 권부의 계산이 군인과 민간인의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다. 김 교수는 “권력승계와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 처하면 북은 준전면전 상태로 경제위기를 돌파하려고 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김종대 편집장의 우려도 이 대목에 있다. 그는 주기적·반복적 포격을 감행하는 ‘김정은식 군사주의’와 작전예규와 교전규칙을 적극적·공세적으로 수정하려는 ‘이명박식 군사주의’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23일 연평도 포격이 발발하기 직전 4시간 동안, 한국군이 서해상에서 3657발의 포격을 하며 사격훈련을 벌였다는 사실이 국회 국방위에 보고된 국방부 자료에서 밝혀졌다. 1시간에 900여 발의 포를 쏘았다는 것인데, 그 규모로 보아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훈련은 북한의 포격으로 중단됐다. 압도적 우위를 과시하려는 이명박식 군사주의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김정은식 군사주의가 정면 충돌한 것이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상대가 쉽게 확전하지 못할 때를 노려 도발하는 방식이 장기적·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면전의 파국을 막으면서도 상대를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제한된 링’이 필요한데, 그것은 섬을 포함한 바다고 특히 서해라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상대가 쉽게 확전하지 못할 때를 노려 도발하는 방식이 장기적·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 장소는 1949년과 달리 육상이 아닌 바다일 것으로 김 편집장은 예측한다. 전면전의 파국을 막으면서도 상대를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제한된 링’이 필요한데, 그것이 섬을 포함한 바다고 특히 서해라는 것이다.

다시 포 사격을 하면 공중폭격으로 타격하겠다는 으름장이 청와대와 군부에서 나오고 있다. 공중폭격은 전면전 직전의 상황이다. 김동춘 교수는 “그 정도가 되면 더 큰 전쟁을 원하지 않는 중국과 미국이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것은 한반도를 다시 한번 미·중의 주도권에 갖다 바치는 일이다.

남북의 충돌은 미·중의 헤게모니로 이어져

1949년 남북간 국지전이 벌어진 데도, 이듬해 전면전이 발발한 데도 미국·소련이 핵심 변수 노릇을 했다. 소련군은 1948년 10월부터 38선상에서 철수했고, 미군은 1949년 1월부터 철수했다. 두 나라 모두 군사고문단만 한반도에 남겼다. 미·소 무력의 공백 상태에서 남북의 권부는 ‘독자적 무력 사용’의 유혹에 빠져 들었다. 동시에 미·소는 남·북한에 ‘선제공격 불가, 반공격 적극 찬성’의 카드를 내놓았다.

미국 전략첩보부(OSS) 부처장 굿펠로우는 1949년 9월 무렵 서울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남측 주도로 북을 공격하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라. 그러나 북이 남을 공격한다면 그 결과가 3차 대전이 된다 할지라도 곧장 북으로 진군해야 한다.” 소련의 스탈린은 1949년 3월 김일성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북이 먼저 남침해서는 안된다. 적이 침략의도를 갖고 조만간 침략해올 것이다. 그때 반격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 주변 강대국이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결국 그들의 뜻대로 전면전에 돌입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는 게 교전규칙이고, 그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 고비를 끊어내는 계기를 찾아야지, 그저 단호한 대응만 외치면 (남과 북의) 사람들은 계속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과 북이 단호한 대응을 거듭한 끝에 맞이한 한국전쟁에서 적어도 200만명이 죽었다. 2010년은 분명 달라야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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