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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KIN] >[책장 찢어먹는 여자] 지독한 커피 마니아, 고흐와 발자크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고리오 영감> <인간희극>으로 유명한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에게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꼬리표 외에도 두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1) 그들은 프랑스 파리 시내 혹은 근교의 작은 ‘다락방’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생산해냈다. 2) 두 사람은 지독한 커피 마니아였다.
먼저 위대한 두 예술가의 다락방을 들여다보자. 네덜란드 태생의 반 고흐는 33살이던 1886년 파리로 건너와 여러 곳을 전전하다, 1890년 5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로 건너간다. ‘오베르주 라부’라는 싼 여인숙을 발견한 고흐는 그곳의 다락방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폭발시킨다. 생애 마지막 주거지에서 그는 단 두 달 동안 70점이 넘는 작품과 습작, 수많은 소묘와 편지, 동판화 1점을 남겼다.
발자크는 어떤가. 아들이 공증인이나 변호사 같은 평범하고 부유한 시민이 되길 바랐던 가족 앞에서 스무 살의 발자크는 작가가 되어 대단한 걸작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레디기예르 거리 9번지에 (지금은 그마저도 허물어지고 없어진) 낡아빠진 6층의 다락방을 작업실로 삼는다. 고흐의 다락방이 예술가의 마지막 혼을 불사른 공간이라면, 발자크의 다락방은 제대로 된 소설 한 편 써본 적 없는 새파란 청춘이 예술혼에 막 불을 지피려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발자크는 예술적 감성보다는 대작가가 되겠다는 야심만 충만했다. 힘은 넘쳤으나 스스로 무엇을 써야 할지는 몰랐다. <발자크 평전>(푸른숲 펴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 발자크는 1828년 29살이 되기까지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문학적 막노동꾼”에 불과했다. 작가적 양심은 악마에게 팔아버리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거침없이, 무슨 글이든, 공장에서 찍어내듯 한없이 써댔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거나 혹은 뇌와 마음을 자극하는 ‘엔진’은 다름 아닌 커피였다. 파리에서 독주 압생트에 홀딱 빠진 고흐였지만, 파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흐가 중독되다시피 한 음료는 커피였다. <고흐의 다락방>(마음산책 펴냄)을 쓴 미술사학자 프레드 리먼과 요리역사학자 알렉산드라 리프는 이렇게 전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남동생 테오에게 5일 동안 “커피 스물세 잔과 빵만으로 지냈다”고 하는가 하면, “나는 규칙적으로 충분한 식사를 하지 않고 커피와 술만으로 지냈다”고 고백한다.
츠바이크가 말하길, 발자크에게 커피란 “발자크를 계속 작동하도록 하는 검은 석유”였다. 발자크에게 커피 포트는 종이와 펜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 도구였다. “커피가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게 된다. 이념들은 위대한 군대처럼 전쟁터에서 앞으로 나가고 싸움이 시작된다. …인물들은 옷을 차려입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이고….” 발자크는 어떤 책에 대해 오직 커피 덕분에 완성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통계학자는 발자크가 54살 평생 동안 5만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고 추정한다. 그것도 아주 쓰고 지독한 것으로.
여기서 드는 궁금증, 이 글을 쓰는 기자에게도 ‘검은 석유’를 주유하면 고흐의 창작력이 그랬듯 문장력을 폭발시키고, 발자크의 원고지가 그랬듯 제가 맡은 지면이 주옥같은 기사와 제목으로 뒤덮일 수 있을까요. 아아, 그런데 오후에 마신 카페모카 한 잔으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군요. 몇 잔이나 더 마셔야 내일 마감까지 무사히 날 수 있을까요. 알려만 주신다면 10만 잔도, 100만 잔도 마시지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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