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하는 고 황장엽씨 수양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11일 오전 수양딸인 김숙향씨가 분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0일 숨졌습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안전가옥에 있는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군요.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스승을 지냈다는 이력 탓인지 그의 죽음에 세상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황 전 비서는 지금까지 남쪽에 온 2만명 가까운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 인사였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죽음 또한 극적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선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65돌을 기념하는 화려한 열병식이 열렸습니다. 황 전 비서는 생전에 끊임없이 북한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의 부음을 접했을 김 위원장의 심사가 궁금합니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각 신문의 태도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죽음은 사망일까요? 타계일까요? 별세일까요? <한겨레>는 그의 죽음을 ‘사망’이라고 전했습니다. 타살 가능성은 없다는 경찰의 설명을 덧붙여서요. <조선일보>는 ‘별세’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중앙일보>는 ‘타계’라고 표현했군요. 국어사전을 보니 ‘별세’는 윗사람이 죽었을 때, ‘타계’는 귀인이 죽었을 때 쓰는 말이라는군요.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황씨는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김씨 세습왕조가 무너지는 날과 북한 주민이 폭정에서 해방돼 자유를 되찾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씨의 못다 이룬 꿈은 이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이뤄내야 할 꿈으로 넘겨졌다”고 추도했습니다. 황 전 비서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결국 북한 세습체제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보입니다.
북한의 3대세습을 북한의 내정문제로 보는 민주노동당과 이를 비판한 <경향신문>의 사설이 화제입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까지 나서 ‘진보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일관성’이라며 민노당의 태도를 옹호하고 나섰죠.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이 오늘 칼럼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진보의 경박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인데, 민노당과 이 대표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통일은 남북 양 체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북한의 세습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리는 통일의 상은 어떤 것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도 말하지 않는 게 민노당과 당대표의 판단이며 선택일까”라고 묻는군요.
유강문 e뉴스부장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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