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관욱 ㅣ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10일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1층 로비에서는 그동안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하청 소속 노동조합원들의 파업 현장에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원이 파업 반대시위를 하고, 이 모든 상황을 중재할 책임자인 이사장은 보다 못해 단식에 돌입한 것이었다. 충격과 놀라움을 넘어 배신감마저 밀려왔다. 당시 공단 고객센터 소속 노조원들은 ‘고객센터 직영화,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생활임금 보장’을 위한 총파업을 단행하며 원주 본사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맞서 공단 소속 정규직 노조는 파업의 정당성을 비판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파국을 막겠다며 14일 김용익 공단 이사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결국 두 노조가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21일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당시 각종 미디어에서는 ‘노노 갈등’만을 집중 부각했으며, 고객센터 노조의 요구는 오로지 ‘직고용’에만 있는 것으로 비쳤다. 심지어 직고용과 관련해서 ‘역차별 반대’ 청원이 올라오고 엠제트(MZ)세대가 분노한다는 식의 보도도 나왔다. 왜 고객센터 하청기업 소속 상담사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1년 반 넘게 투쟁을 지속해왔는지에 대한 분석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던 필자는 작년 8월 고객센터 노조로부터 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공단 고객센터는 각종 민감한 개인정보(소득과 재산, 방문한 병의원 정보 등)를 다루는 곳으로 국민들의 생명안전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2006년 업무효율화 명목으로 민간업체에 맡겨진 상황에서 상담사들은 안정적으로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민간업체에 양질의 상담이란 더 많은 콜 실적의 확보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상담사는 상담사끼리, 하청업체는 하청업체끼리 상호경쟁하는 체계에 머물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과중한 상담업무에 노출된 상황에서도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제대로 된 휴식시간 보장도 없이 알레르기와 두통을 유발하는 숨 막히는 ‘마스크’를 상담 내내 착용하고 있어야만 했다. 특히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시민들로부터 공단 정규직 직원들에게 직접 민원이 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까지 떠맡고 있었다. 건보공단이 취급하는 개인정보의 중요성과 공단의 공익적 목적을 생각한다면 정말로 우려스럽기만 한 현실이었다.
필자가 이번 사태를 목격하며 가장 우려한 것은 상담사 노조원들이 받을 정신적 외상이었다. 노조원 앞에 트럭 위 전광판으로 “타 기업 정규직을 공단 정규직으로?”를 광고하는 신원불명의 집단(‘직영화 반대 직원 모금 제작’)이 있었고, 1층 로비 시위 장소 앞에서는 “공정성 훼손하는 직고용, 직영화 반대한다”며 펜스 차단봉 안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공단 노조원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파업에 참여한 고객센터 노조원들에게 마치 자신들이 노력도 없이 불공정하게 공기업 직원이 되려고 욕심 부리는 파렴치한 채용 비리자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이 단순 혐오표현을 넘어 엄연한 폭력의 일종으로 미국 정신과 교수인 브렛 리츠가 말한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타인 혹은 권력에 의해서 도덕적 가치가 크게 손상당했을 때 마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듯 실질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원인으로부터, 하청과 원청의 책임자로부터, 심지어 정규직 노조원한테까지 도덕적 대우가 아닌 모멸감을 받아야 한다면 이것은 공정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처사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도덕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이런 노동 현실에서 과연 건강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