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 한국이민정책학회장·명지대 교수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학적은 바꿀 수 없다! 이 말은 국적보다 학적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고취하기 위해 시중에 오가는 이야기를 빗대어 종종 인용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과 문화다양성 관련 법·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국적이 갖는 의미와 무게감은 남다르다. 우리는 지금 국적이 없는 개인을 상상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국가로부터 국적을 부여받는다. 오늘날 국적은 선택의 산물이 아니며 부여받은 산물이다. 개인은 출생과 동시에 어느 한 국가의 국민이 되는데 이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느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를 선택하고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국가도 선택하고 태어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이제 “한 국가의 국민 되기”라는 대세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대한민국의 국적법을 다시 생각한다.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개정안은 2대 이상 한국에 살고 있거나 우리와 혈통을 같이하는 영주권자의 국내 출생 자녀가 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이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일정 부분 진지하게 적용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편, 영주권자의 미성년 자녀에게 별도의 요건 없이 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고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국적 신청자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일견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을 유심히 살펴보면, 제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출생해야 하고, 출생 당시 그 부 또는 모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그 영주권을 가진 부모가 국내에서 출생하였거나, 우리와 혈통을 같이하는 등 ‘국내 사회와 유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이러한 요건들은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국적 취득 방식과 구별되는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요건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영주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중국 국적인 재외동포만을 배려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따라서 전체 영주권자들에게 평등한 국적 취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고, 국제협약상 특별한 보호의 대상인 이주배경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조기에 우리 국적 취득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운영하면서도 국적 취득 이후 “외국 국적은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그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여 장차 복수 국적을 이용한 개인 이익 추구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지도적 위치의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민자의 국민 만들기를 유도하고 경쟁하는 체제에 돌입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대한민국이 일정 부분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검토하고 도입할 준비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주배경 자녀들에게 국적과 영주권에 기인한 ‘벽’이 존재하는 현실을 국가와 국민은 깊이 있게 고려하여, 영주권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출생할 때 자녀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국민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에 한민족 혈통주의는 헌법 정신과도 부합한 오랜 전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민족과 혈통주의 중심의 국적부여 가치 체계는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가에게 국민은 더 이상 화석과 같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국적법의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출생지주의와 외국인 이주민의 영주·귀화의 문호가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국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