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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요즘 학생들 영어 향상된 걸까

등록 2021-07-14 16:01수정 2021-07-15 02:37

[왜냐면] 김재중

영어학원 원장

실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나온 영어 지문 속 첫 문장을 보자. “Mathematics will attract those it can attract, but it will do nothing to overcome resistance to science.”(수학은 그것이 유인할 수 있는 것들을 유인할 테지만, 과학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 논문에서 발췌된 이런 추상적인 내용의 문제를 한국 학생들은 ‘2분’ 내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영국 남자가 수능 영어를 푼다면?’ ‘타일러도 틀리는 한국 수능’ 같은 유튜브 영상 속 원어민들은 자신도 못 푸는 문제를 우리 학생들 10% 이상이 90점 넘게 맞춘다는 사실에 놀란다. 요즘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그토록 향상된 것일까?

아니다. 이는 영어가 암기과목이 된 결과다. 그 시작은 수능과 <교육방송>(EBS)의 연계였다. 출제될 유사 문제와 지문이 이미 존재하니 외우고 ‘찍기’에 집중하게 됐다. 서강대 대학원 채서영 교수는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상대방의 말과 글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입시 현장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도한다. 지문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2분을 훨씬 넘기 때문에 정답을 고를 단서를 재빨리 찾도록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영어 실력으로 대학에 온 새내기들을 보고 교수들은 고교 영어 교육을 불신한다. 실제로 최근 대학생들은 영어로 된 대학 교재를 이해하지 못해 고생하고 유학과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에 시간과 비용을 전보다 더 낭비한다.

수능뿐 아니라 학교 영어 시험에도 문제가 있다. 내신을 위한 시험에는 교과서, 부교재, 모의고사 등이 포함되므로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을 위해 이런 자료들을 변형, 심화하여 깊이 있는 문제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수시 확대로 인해 성적에 예민해진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이 두려워 그럴 수 없다. “왜 3번은 안 되나요? 다른 시각으론 답이 될 수 있잖아요?” 같은 말에 창의적인 출제는 단념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원문을 그대로 옮겨 문제를 만든다. 이는 학생들이 ‘붙여넣기’ 될 원문을 암기하는 악순환으로 직결된다. 한창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기계적인 암기만 강요된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중학교 영어 교육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와 동일하게, 아니 더 심하게 문법 위주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있다. 단순히 고등학교 커리큘럼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큰 그림의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제껏 한국의 영어 교육은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왔지만 현실은 개선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해외여행과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젊은이들의 영어 발음이 기성세대보다 좋은 것을 보고 이들이 영어를 잘하고 행복하게 배우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영어 교육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처사다. 입시 현장에 있는 나는 대부분의 일반인이 이런 현실의 문제점들을 모르는 것 같아 유감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제도를 고쳐야 하나? 고친다고 달라질까? 이런 의문들이 들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영어를 왜 배우는지, 어떻게 해야 잘 가르치고 배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겠다. 물론 이 문제는 2분 내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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