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등록금은 학내 혐오표현 문제 해결에

등록 2021-07-19 18:00수정 2021-07-20 02:37

[왜냐면] ‘대학 공론장의 미래’ 연쇄기고 _3

김소현|대학생 공동체 ‘유니브페미’ 회원·대학 2학년

지난 5월, 유니브페미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이 대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20·21학번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20학번 학생이 “수업을 듣는 것 빼고는 대부분의 학교생활이 에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표현한 것처럼 대학생활에 있어 에타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학교에 대한 정보나 여론을 어디에서 접하고 있냐는 질문에 인터뷰 대상자 전원이 에타라고 대답했고, 에타를 직접 이용하지 않더라도 에타가 학교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존재한다고 느끼며, 그 정도를 최대 100으로 표현할 때 절반이 70 이상을 선택했다. 에타는 원칙적으로 그 학교 구성원에게만 입장을 허용하는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 학생회와 같은 자치기구의 소통창구로 쓰이는 경우도 흔하다. 에타는 학교생활을 위해 필연적으로 설치하게 되는 ‘필수 앱’으로서, 캠퍼스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그러나 에타는 그 안의 차별과 혐오로 인해 건전한 토론이 불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대에서는 일정 시간 동안 신고 수가 누적되면 자동으로 조치되는 에타의 시스템을 악용하여, ‘페미니즘적’으로 보이는 게시글을 삭제하고 글쓴이의 계정을 정지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신고를 유도하는 오픈카톡방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에타 안에서 주류 정서와 다른 입장을 가진 발화자가 쫓겨나는 일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많은 학교의 에타는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장애인 혐오 등의 차별 정서를 기반으로 혐오표현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소수자들과 그의 지지자들은 악성 댓글, 무분별한 신고, 혐오표현에 노출되어 결국 에타를 떠난다. 위협과 단절로 이루어진 공론장은 공동체의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망가진 공론장을 회복하고 다시 공동체로서의 대학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대학 본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대부분의 학칙이 밝히는 대학 설립 및 운영의 목표는 ‘각 분야의 인재 양성을 통해 사회의 발전 및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는 것’인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의견을 형성하고 상호 교환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은 구성원들 간의 존중을 기반으로 모두의 발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공간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본부는 온·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혐오표현 문제에 대응함으로써 안전하고 민주적인 공론장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 인권침해에 대응하고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학내 인권센터나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등의 규정에서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오랫동안 책임을 방기해왔다. 온라인 공간을 캠퍼스의 일부로 여기지 않거나, 에타 같은 사기업의 플랫폼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거나, 학생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일어난 혐오표현 문제는 자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공론장을 ‘공정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금, 더 나은 대학을 위해 각 학교 본부가 직접 나서 혐오표현 예방·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첫째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혐오표현 예방·대응을 위해 관련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본부가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평등과 반차별의 내용을 담은 인권헌장을 제정하여 정관에 포함하거나 비슷한 위상을 가진 규정으로 채택함으로써 차별 시정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혐오표현을 포함한 차별행위에 대응할 의무와 권한을 가진 차별시정기구가 존재해야 하는데, 기존의 학내 기구에 그러한 역할을 부여하거나 별도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대학 본부는 차별시정기구 규정에 온·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학내 혐오표현 문제 해결에 관한 업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의 대응방안을 구체화하여 공시하고 사건처리 절차를 원활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모든 혐오표현을 사건화하여 징계와 처벌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학 쪽은 실태조사와 교육 등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함으로써, 학내 구성원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더는 혐오표현을 재생산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 대학 본부가 책임주체로 나서 혐오표현 문제 대응을 선도한다면, 수많은 에타 이용자를 비롯한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혐오표현을 허용하지 않는 대학 사회로 함께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