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상호ㅣ한국폴리텍2대학 학장
산업 대전환기 기술과 사업의 재편은 작업조직과 노동 과정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기업전환은 고용구조의 변화는 물론, 직무 소멸과 재배치, 노동력 이동과 교체, 노동자의 입퇴직 등 노동전환을 초래한다. 그래서 노동전환은 기존 노동시장과 일자리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수많은 피해자와 희생자를 낳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산업전환과 마찬가지로, 노동전환도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공정한 노동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산업구조가 불균형하고 산업관계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전환이 과연 공정할 수 있단 말인가? 탈탄소·디지털 경제라는 시대적 도전 앞에서 공정한 노동전환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지난 7월2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제출된 최초의 정부 대책이다.
글로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산업일자리 창출전략뿐만 아니라, 포용적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제도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자동차 내연기관, 석탄화력발전 분야같이 고용충격이 빠른 시일 내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산업의 경우 공정한 노동이동을 위한 선제적 대응 방안으로 사업전환, 노동전환, 지역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정부는 재직자의 신산업 분야 직무전환을 위한 교육 훈련 지원 등 고용유지 대책, 불가피한 인력조정 발생 시 사전적인 전직 훈련과 재취업 지원 조치 등 고용연계 대책, 그리고 취약산업 소속 기업들이 집중된 지역의 경우 미래신산업 육성과 사업전환 다각화를 위한 잠재위기 고용대응사업 등을 지원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공정한 노동전환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달 체계와 법제도 정비, 인프라 확충만큼이나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산업별 위원회 구성을 통해 노사의 입장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주력산업의 사업 재편 및 전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 고용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생협력적 대안을 찾겠다는 의지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노사정은 탈탄소·디지털 경제라는 산업 대전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사정이 노동전환의 필요성과 고용충격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산업전환의 과정과 결과에서 어떻게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자동차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사회적 대화라는 단어를 회피하지 말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금기시해선 안 된다. 그들이 보도자료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가 시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전환의 기획과 집행을 논의할 수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가칭)자동차산업전환위원회를 공정하게 구성하고 정의롭게 운영하는 게 우선이다. 산업별 노사정 협의도 제대로 못 하면서 노사 공동결정, 더 나아가 노사정 정책협의를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노동조합 스스로가 산업전환은 물론, 노동전환의 논의 과정에 참여와 결정권을 요구해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이번 정부발표가 노동자 참여가 빠진 반쪽짜리 정부 대책이라는 노동계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지금부터라도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산업별 위원회에서 산업구조 전환의 전망과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노동전환 과정에 대한 참여가 정말로 중요하다면 노동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부터 결단해야 한다. 공정한 노동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참여는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책임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