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 한림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만취의 인사불성 상태에서 본인 자신이든 가까운 주변, 가족에게서든 뒤돌아 생각하면 섬뜩할 정도의 위험에 노출된 경험은 우리에겐 아주 드물지 않다. 어릴 적 가족과 갔던 공원에서 술 마시고 싸우던 옆자리 어른들부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과도한 음주 행태와 업혀서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안내되었던 동기들·후배들, 직장인이 되어서도 기억이 끊긴 귀갓길과 분실되거나 다행히 며칠 지나서나마 회수되었던 중요한 물건들…. 이러한 고위험 음주로 인한 사고와 폐해는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애주가에게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하고 빈번한 모습들이다.
통계 조사를 보더라도, 2018년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통계-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19살 이상의 월간 폭음률은 성인 남자의 51%, 성인 여성의 27%, 전체 38.7%였다. 이 수치는 2009년 이후 매년 큰 변화 없이 30% 후반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대학생 조사에서는 50.5%가 1년에 2회 이상, 26%는 지난 6개월에 2회 이상 블랙아웃을 경험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2017년도의 한 조사에서도 음주자 중 업무수행 지장 30.1%, 타인과의 말다툼 18.3%, 타인의 비난 13.8%, 부부나 가족 간의 불화 17.6%, 친구와 멀어짐 8.4%, 싸움 8.2%, 기물 파괴 7.2%, 원치 않은 성경험 9.1%였으며, 이 중 한가지 이상을 경험한 사람이 대부분(98.3%)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고위험군 폭음의 기준을 한번 술자리에서의 음주량이 남자는 7잔, 여자는 5잔 이상으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덧 유쾌했던 술자리는
‘각 1병’의 외침 속에 위험과 사고의 늪으로 빠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우리의 고유 음주문화이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별문제 없을 것이라 간과한다. 사실 이 역시도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무의식적 도피, 외면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서 음주 문제는 또 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높이고 있다는 보고가 많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소중한 우리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자신의 폭음과 고위험 음주의 실태를 직시하고, 건강하고 책임 있는 음주 행동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개인적인 노력의 기저에는 국가 정책적으로도 안전한 사회를 위한 건강하고 책임 있는 음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알코올의 구입, 음주 장소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부터 책임 있는 판매자 규정 및 훈련교육, 직장 내 음주문화 개선, 주류 마케팅의 규제 강화 등 음주 폐해 감소를 위한 많은 노력이 체계적으로 방향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할 때다. 더 늦으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