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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노태우 묘, 국유림 용도변경 안된다

등록 2021-11-15 17:54수정 2021-11-16 02:03

10월 30일 오후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의 운구 행렬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화장을 위해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월 30일 오후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의 운구 행렬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화장을 위해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왜냐면] 이병호ㅣ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장례는 국가장 등 몇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락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라고 본다. 노태우 묘역을 어디에 어떻게 조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11월9일치에 의하면 노태우 유족은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인근 국유림 991㎡(300평)를 사고 싶다는 뜻을 장례위원회를 통해 정부에 전달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가족 협의 과정에서 임진강과 북녘땅 조망 등 여건이 나은 국유지 매입을 우선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산림청은 국유림 보전지역(보전산지)은 기본적으로 산림 훼손이 금지된 지역으로 묘지 조성을 위한 매각은 불가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유지·사유지를 구분하지 않고 유족이 원하는 땅을 먼저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앞서 10월28일 유족은 경기도 파주 동화경모공원 부지 500여평도 둘러보고 갔다. 500평은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과 파주시민 181명이 영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태우가 대통령 재임 시절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에 앞서 접경 지역인 파주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이동하여 군사반란(12·12사태)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전두환과 함께 광주시민학살에 가담하여 내란죄와 부정축재 등으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겨우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이다. 노태우의 아들이 3년간 광주5·18민주묘지를 5회 방문하여 사죄하였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과오에 관한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한 적이 없다.

독일의 히틀러는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을 했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나름의 공적도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청산하려고 했고, 현재도 그렇다. 독일에 히틀러의 묘지가 없는 것은 물론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아예 관심도 없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아래에는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와 함께 민주열사 장준하 선생 공원이 있다. 도로 옆에 장준하 공원이란 작은 기념비가 있지만, 지대가 낮고 큰 도로와 많이 떨어져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공원 광장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의 묘가 나오는데 장준하의 ‘돌베개’를 연상케 하는 너럭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정도로 소탈하고 아름답다.

훗날 이성적이고 비판적 의식을 가진 시민이 비슷한 곳에 자리잡은 장준하 공원과 노태우 묘역 두곳을 찾아왔을 때 무엇을 보고 느낄지 궁금하다. 그들은 두 묘역이 어느 정부 때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접근하기 쉽고 전망 좋은 노태우 묘역을 보며 ‘역시 대통령을 지내서 그런지 명당이네. 사람은 일단 출세하고 봐야 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북녘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복형제들이 있다. 군사반란에 내란죄로 17년형을 선고받고서도 크고 호화스러운 묘에 잠들어 있는 노태우와 통일동산에서 함께 영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유족이 진심으로 아버지 그리고 남편 노태우의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면, 그가 파주 교하읍 선산에 조상들과 함께 영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전두환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치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노태우의 국가장 결정을 보고 국민들이 많은 의구심을 갖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국유림의 용도를 변경하면서 300평 대규모의 묘역 조성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고 옳은 결정인지에 대해 숙고하기 바란다. 인생은 짧고 역사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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