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진혜련 | 긍정적으로아이키우기 슈퍼바이저·아동심리전문가
2020년 10월, 16개월의 아이가 입양된 지 271일 만에 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 일명 정인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공분을 샀다. 이를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집중되었고,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움직임과 또 다른 피해를 막고자 하는 관심이 점차 일어났다. 마침내 올 1월, 62년 동안 민법에 존재해온 일명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10여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부모나 양육자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을 연일 뉴스로 만난다.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3명, 그중 학대 행위자의 86.3%가 부모다. 그들은 하나같이 훈육 차원에서 시작돼 일어난 일이라는 변명을 둘러댔다. 훈육을 하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더 심한 벌을 주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아직도 훈육이 아동학대에서 변명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가해자 부모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가을에 나온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학대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대다수가 이전보다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로 의심될 만한 상황을 보더라도 신고할 만큼 심각한 사례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신고가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다, 혹은 아동학대로 의심은 됐지만 훈육 차원이라고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훈육과 체벌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훈육은 아이가 올바르게, 타인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돕는 것이다. 반면에 체벌은 곧 폭력이다. 훈육 과정에서 그 어떠한 체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정인이가 계속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체벌 없는 훈육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대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모든 부모나 자녀에게 다 맞는 해결책은 없다’이다. 저마다 기질, 발달 단계, 성장 배경, 환경 등이 다르기에 모두에게 효과적인 일관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고 체벌 없이 안전하게 훈육하기 위해 부모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는 있다. 첫번째로는 체벌 없이도 아이를 잘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때로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은 자녀의 양육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 종종 체벌을 선택하게 만든다. 체벌은 순간적으로 아이를 복종시키거나 부모가 원하는 당장의 결과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낮추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신뢰를 저버리는 결과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체벌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지워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두번째 자세는 아이의 양육에 있어 장기적인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자녀가 했으면 하는 행동, 예컨대 숙제를 한다거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와 같은 단기적인 목표가 아닌,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거나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와의 장기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단기적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이때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부모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부모는 자신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아이를 비난하며 분노하거나 더 나아가 아이가 미래에 잘 성장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까지 가지게 된다.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은 결국 부모를 폭발하게 만들어 폭력적인 체벌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부모의 체벌에 대한 두려움에 싸인 자녀는 순종을 할 수도 또는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에서 이러한 행동은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부모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제안한 두가지 자세는 체벌 없이 긍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라도 미래의 내 아이와의 관계는 해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존중해야 훗날 나도 아이에게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부모로서의 길에서 방향을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