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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인류세의 기후―팬데믹 드라마

등록 2022-01-10 18:02수정 2022-01-11 19:58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왜냐면] 존 에퍼제시 |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 글은 드라마 <고요의 바다>(2021)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미래부> 도입부에서 인도를 강타한 치명적인 폭염을 그린다. 동틀 무렵 38℃인 기온은 한낮에 42℃까지 치솟는다. 놀랍지는 않다. 소설은 202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미 202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기온은 열돔 현상으로 49.6℃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폭염은 60%의 습기와 결합해 열사병 등을 유발한다. 로빈슨은 심각한 기후위기 속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는 장르인 기후소설, 클라이파이(Cli-Fi) 문학의 선구자다. 기후소설은 발터 베냐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화석연료 사용으로 맞게 된 생태위기의 미래에서 과거를 되돌아본다. 흔히 인류세라고 부르는 이 위기의 시대에 지구는 계속 파괴된다.

최항용 연출, 박은교 극본의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인터스텔라>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대가뭄을 상상한다. 말라붙은 한강은 ‘더스트 볼’(모래바람이 자주 발생하는 반건조지대)이 되고, 시도 때도 없이 산불이 나며, 아이들은 죽어가고, 빈부 격차는 식수 격차로 이어진다. 5갤런의 식수통을 들고 배급소에 늘어서 있는 시민들의 이미지는 1973년 석유위기를 연상케 한다. 20세기 인류가 석유 때문에 싸우고 목숨을 잃었다면 미래의 인류는 물 때문에 다투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고요의 바다>는 파괴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기후위기 드라마 <포티튜드>나 <이어즈&이어즈>, <설국열차> 등과 유사하다. 극중 송지안 박사(배두나)는 물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는 월수를 가지러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인 발해기지로 떠나는 미션에 합류한다. 이 월수 샘플은 플라톤의 파르마콘처럼 약이자 독이다. 이 샘플은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현재 지구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처럼 인간의 목과 폐를 공격하며 빠르게 증식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전세계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또다시 록다운을 진행하던 12월24일 공개되었다.

<고요의 바다> 속 자본주의는 건재하다. 물이 없는 무수계급과 달리 유수계급은 보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건강보험을 폐지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불평등한 물분배에 저항하며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군에 빠르게 진압된다. 미래에도 ‘열정 중독’은 여전하다. 캡틴 한윤재(공유)는 더 높은 식수 등급을 얻어 딸(김보민)의 다리 절단을 막고자 한다. 인간 테스팅 프로그램 생존자 루나073(김시아)은 트라우마로 인해 제멋대로 날뛴다.

진정한 저항의 목소리는 재난 자본주의 세계에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이 두 여자아이의 몸을 통해 나온다. 폭력을 겪은 어린 소녀들의 억눌린 슬픔과 고통은 기후위기의 인류세에 유의미한 행동을 거부하는 북반구 선진국의 무능으로 인해 미래가 절단되고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 전세계 젊은 세대들의 결집된 분노를 설명한다.

<고요의 바다>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는 현재 진행형이며, 유명무실했던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이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고요의 바다>는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훌륭한 기후 픽션으로 강력한 경고를 선사한다. 다른 행성에서 해결책을 찾느라 자원을 낭비하는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이 미래세대에도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변화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두번째 지구는 없기 때문이다.

번역 이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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