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경구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산업혁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근대 학교제도는 사실상 그 수명을 다했고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는 외침도 오래되었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총회는 낡은 교육이 이미 사회적으로 파탄이 났음을 공식 선언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교육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이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지 학생 시절에 ‘왕은 죽었다. 왕 만세!’ 구호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왕국을 일신하려면 선왕을 묻어버려야 하듯, 교육의 미래는 낡은 교육이 사회적 효능을 다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열리지 않을까?
유네스코 하면 흔히 세계유산을 떠올리지만, 활동의 핵심은 교육이다. 6·25로 잿더미가 되었던 한국에 교과서 인쇄시설을 지어주고 교육체제의 확립을 지원한 것도 유네스코였으며 평생교육과 국제이해교육(세계시민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 또한 유네스코를 통해 도입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 교육 격차 확대, 온라인 교육의 활성화 등으로 모두가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발간한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전세계 학자와 정치인들로 구성된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며 2년여간 고민한 결과물이다. 다루는 내용은 상당히 방대한데, 한국이 주목할 점 두가지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첫째는 ‘전 생애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의 보장’이다. 교육이 생애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관점에 서면, 학교 교육은 평생학습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나 교과과정 개편 논의를 지켜보면, 마치 학교가 삶의 마지막 교육 기회라도 되는 듯 어른들 보기에 중요하고 필요하고 유익한 것들을 어떻게든 교과과정에 모두 담으려 한다. 이래서야 놀이 시간은커녕 잘 시간도 모자라겠다. 학교는 배우는 힘을 길러주고 잠재력을 능력으로 바꾸어주는 곳이며 다른 학생들과 놀고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곳이다. 인공지능(AI)에는 메타러닝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러닝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
둘째는 ‘공공재이자 공동재’로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낯선 개념을 사용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네스코는 교육이 공공 재원의 투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교육의 방식 또한 협력과 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야만 하는 제로섬 게임에 내몰리며 오로지 개인의 분발과 ‘노오력’으로 상황의 타개를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는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팬데믹 상황에서 시한에 맞추어 마감하느라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 보고서는 미래를 향한 풍부하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네스코와의 매우 특별한 인연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도 크고 역동적인 국가위원회로 성장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관계기관 및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이 보고서의 내용을 구체적인 정책 제안과 제도로 발전시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여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한국이 이뤄온 교육의 미래와 관련한 경험과 성취는 인류 공동체에도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많은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