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시민 중독, 어떻게 막을 건가

등록 2022-02-14 18:11수정 2022-02-15 02:32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다른 사각지대

[왜냐면]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골자는 위험을 관리하지 않아 노동자와 시민 등의 인명 피해를 초래한 사업주 등 실질적 안전관리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원인 방치에 대한 고의성, 반복성, 중대성 등에 따라 책임자를 합당하게 처벌함으로써 기업 등 모든 조직이 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 경영책임자의 의무 내용과 범위 모호, 암 등 만성질환 제외 등 여러 제한 때문에 중대재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또한 노동자 중대재해를 제외한, 시민 중대재해 예방에 대해선 문제 제기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과거 주요 물질중독 질병 사례를 들어 시민의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취약한 정부 거버넌스를 살펴보고,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2000년부터 매년 어린이들과 임산부들이 집단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호흡기질환에 걸리거나 이로 인해 사망하였다. 피해자들은 물론 이들을 치료한 병원도 원인을 모르고 신고할 곳도 찾지 못해, 비슷한 질병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누적되었다. 2011년 말에야 반복되는 임산부 집단 중증 폐렴 발생의 조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1994년부터 판매된 40여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이 20년 가까이 건강 피해를 반복해서 일으키고 있었지만, 정부의 공중보건 감시체계 결함으로 중독 사고가 참사에 이를 때까지 방치된 것이다.

2012년에는 성인 남성이 방수 스프레이를 옷에 뿌린 후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중태에 빠졌다. 제품에 들어 있는 방수용 불소 공중합체 물질이 원인이었다. 1990년대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 중독관리센터(중독센터)에 많이 보고된 중독 사례와 같다. 일본에서는 매년 68명이 방수 스프레이 노출로 인한 급성 호흡기질환에 걸린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된 통계가 없다.

2016년 햄버거를 먹은 유아(4살)가 ‘용혈성 요독증’에 걸려 신장이 대부분 망가졌다. 부모는 햄버거를 원인으로 의심했지만, 검찰은 기업의 책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칭 ‘햄버거병’은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잘 알려진 중독 질환이다. 미국 중독센터는 햄버거 패티와 채소 등이 O157균에 오염되어 어린이에게는 신장 중독, 성인에게는 혈뇨 등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햄버거 오염에 따른 크고 작은 중독 사례는 빈번하지만 통계는 물론 정부의 대응은 없었다.

2017년 일회용 생리대 건강 피해에 대한 정부 대응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특정 제품의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들에게서 생리혈의 양이 줄어들거나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경험담이 에스엔에스(SNS)에 퍼졌지만, 피해 원인, 종류, 규모 등에 대해 즉각 대응하는 정부 기관은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원인 제품도 없어져 기업에 책임을 지울 수도 없었다.

이외에도 라돈 침대, 코로나 살균 제품 등 시민들의 소비 활동에서 크고 작은 중독 사고가 매년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의 시민 중독 감시 체계는 없다. 정부가 허가한 제품을 사용하고 얻은 중독 등 사고를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의한 ‘중대 시민재해’의 요건인 “동일한 원인 또는 사고로 2,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유럽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모든 나라가 1950년대 초반부터 중독센터를 설립해 시민이 입은 중독, 질병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함으로써 병원의 치료를 돕고, 위험 제품을 시장에서 신속하게 제거한다. 실시간 중독 현황 등 사고 통계를 바탕으로 합당한 처벌은 물론 사고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둔다. 시민들은 소비 활동에서 경험한 불편한 증상, 질병 등을 중독센터에 자유롭게 신고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소비용품의 위험으로부터 시민 중독을 예방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중독센터의 설립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